우울함에도 종류가 있지 않을까.
사람이 우울감에 빠지면 기본적인 생활 루틴이나
개인 환경과 위생을 관리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의 기본 모드는 우울이다.
언제든지, 갑자기 쉽게 찾아온다.
책의 다음 페이지로 한 장 넘기는 수준이다.
이 우울은 또 신기하게 혼자만 오지 않고,
늘 분노를 함께 데려온다.
그래서일까?
무기력, 불안, 좌절 등의 집합체인 우울이 오면,
나는 그걸 견디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그 감정보다는,
그 감정을 느끼는 ‘나’를 견디지 못한다.
우울할수록 점점 더 예민해져서
내 공간에 어지럽혀진 것들,
내 몸에서 느껴지는 체취들,
거울에 비친 푸석하고, 초췌한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어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우울할수록,
내 자리와 물건, 주변을 정리 정돈한다.
샴푸와 바디워시로 몸을 깨끗이 씻어내고,
헤어 에센스와 스킨, 로션을 발라 향이 나게 한다.
손톱, 발톱은 0.1mm도 허용하지 않고,
때가 되면 꼭 잘라낸다.
나와 공간이 깨끗해지면
그때서야 비로소, 온전히 우울을 느낀다.
어차피 우울할 거,
기왕 꼴이라도 멀끔하게 우울한 게 좋지 않나.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그게 우울한 거라고?’,
‘그건 우울한 게 아니야’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넓은 지구에 다양한 사람이 사는데,
우울이라고는 왜 종류가 없을까.
없으란 법도 없잖아?
그렇다.
나의 우울은 이런 종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