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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y 08. 2021

지팡이 짚은 한 노인과 나

2권 / 10권 좀머 씨 이야기를 읽고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지하철 안에서의 성추행 사건이 기사화될 때마다 나는 여자이지만 분명히 억울한 남자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아주 가끔 내가 당해보니 실수와 고의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어느 날 퇴근 시간의 콩나물시루보다 더 빡빡했던 지하철 안에서 한 남자의 팔꿈치가 내 가슴에 닿았다. 너무 혼잡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팔꿈치의 뾰족했던 뼈는 안 그래도 회사에서 마음을 다쳤던 내 가슴을 더 후벼 파듯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팔꿈치에 직접 손을 대기 싫어서 나는 가방을 올려서 그 사람의 팔꿈치를 대놓고 천천히 앞으로 밀었다. 몇 초 사이였지만 상대방의 반응도 궁금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전혀 당황하거나 미안한 기색도 없이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지도 않은 채 팔꿈치를 슬며시 내린 후 차렷 자세로 서 있다가 다음 역에서 내렸다.


가끔씩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황당한 일을 겪고, 직접 따라가서 잡거나 힘으로 맞서는 용감한 여성분들이 뉴스에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과 다르다. 불의를 보면 참고 내가 더 다칠까 봐 피하는 편이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그냥 그 순간순간만 모면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년 전, 8호선 어느 지하철 역사 안에서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내 엉덩이를 꼬집고 절뚝거리며 도망갔다. 그 날은 9월 초, 더웠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나는 멕시코에서 온 거래처 손님들과 서울 투어를 하러 그분들이 묵고 있던 호텔로 향하던 길이었다. 내가 소사원이었을 때부터 같이 일을 하기 시작했던 멕시코 법인장을 포함하여 총 23명의 고객들이 호텔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때 사용할 1회용 교통카드를 미리 구입하려고 기계 앞에 섰다. (주말에 일을 할 경우 회사에 교통비를 청구할 수 있다)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넣고 교통카드 한 장을 구입했다. 가슴 높이에서 발급이 완료된 교통카드는 지갑에 넣고, 종아리 위치에 놓인 잔돈과 영수증을 꺼내려고 허리를 숙인 그 순간 누군가가 내 오른쪽 엉덩이를 강하게 꼬집었다.


그 느낌은 누군가가 살짝 만지거나 손이 스친 정도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 가끔 어른들이 예쁘다고 볼을 꼬집으면 나는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아팠고 싫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성인이 돼서 누군가가 손으로 내 볼 대신 엉덩이를 꼬집은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일어나서 뒤를 돌아봤고 주말의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었던 지하철 역사 안에는 오직 한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지팡이는 단순히 일반적인 산책용 지팡이가 아니라 길쭉하고 약간 구부러진 호두나무 가지로 크기가 아저씨의 어깨를 넘겼고, 아저씨에게 제3의 다리 역할을 해냈다. 그것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낼 수도 없었을 테고, 보통 사람들이 걷는 것보다 몇 배에 달하는 그렇게 먼 거리를 걸어 다닐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발자국을 세 번 옮길 때마다 그는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지팡이를 앞쪽으로 밀면서, 그것으로 땅을 찍으며 온 힘을 다해 몸을 앞쪽으로 쭉 밀어내곤 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원래의 두 다리는 단지 몸을 앞으로 밀어내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존재할 뿐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천적 힘은 오른손으로 나와서 지팡이를 통하여 땅에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개의 나룻배들이 배의 몸체를 장대로 밀어서 물 위로 밀어내는 것과 같은 논리였다.  <좀머 씨 이야기 중에서>


꼬집은 그 힘을 단 몇 초간 추측했을 때 내 또래의 남자가 엉덩이를 꼬집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범인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중절모를 쓰고 말끔하게 양복을 입은 80세 가까이 되어 보이던 한 노인은 나를 스쳐 지나간 후 지팡이를 짚으며 부리나케 도망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빠른 걸음으로 대여섯 번만 성큼성큼 걸어간다면 그 할아버지 어깨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교통카드 발급 기계 앞에서 잔돈과 영수증을 꺼내는 것도 잊은 채 나는 한숨을 쉬며 잠깐 고민을 했다. 교통카드 기계를 마주 보고 있던 천장에는 마치 무대 위에 설치된 마이크처럼 CCTV 두 대가 대놓고 교통카드 기계를 찍고 있었다. CCTV 크기와 나의 거리를 보니 몇 분 사이의 사건이 잘 찍혀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거래처 손님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시간이 남는데 할아버지를 붙잡아서 '할배!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제대로 살고 가소!!'라고 큰소리로 창피를 주고 싶었다.


그때의 내 옷차림은 9월 초 더운 여름 날씨에 서울 투어를 하며 멕시코 손님들과 밥 먹고 사진도 예쁘게 찍을 생각으로 회사에 입고 다니던 옷보다는 얇고 타이트했으며 스커트 길이는 짧았다. 하지만 짧은 스커트를 입고 허리를 조금 숙였다고 해서 내가 허락하지 않은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꼬집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날, 하필 또 날짜가 그 날인지라 할아버지 손이 조금만 더 안쪽으로 갔더라면 1년 넘게 복싱으로 단련된 왼쪽 다리로 (난 왼쪽 다리가 힘이 더 세고 가동 범위가 넓다) 처음으로 사람을 차 버렸을 수도 있었다. 만약 노인이라 치료비 청구를 한다면 한 두 달 퇴사 생각을 접고 회사에서 일을 더 하면 충분히 비용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날도 나는 그냥 못 본 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와서 호텔에 도착했다. 23분의 고객 중 이미 몇 분은 로비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 거래처 손님들이 서울에서의 좋은 추억을 평생 가질 수 있도록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호텔 근처에 있던 대형 마트에 가서 쇼핑도 할 수 있게 안내해 드렸다. 요즘도 가끔씩 코로나만 끝나면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 그분들 중에는 이미 코로나에 걸려서 집에서 격리된 후 (멕시코에는 병원 의료 시설이 충분치 않아서 알아서 집에서 격리를 해야 한다) 이미 백신 접종도 마쳤다고 한다.


좋은 추억과 더불어 그 날 그때의 불쾌한 기억 역시 아직도 남아있는지 나는 지하철 교통카드를 발급할 때마다 아직도 엉덩이를 조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잔돈을 집을 때도 주위를 한번 살핀 후, 허리만 숙이는 것이 아니라 스쿼트 자세로 아예 앉았다가 일어나게 됐다.


올해 읽기로 결정한 10권의 책 중 한 권인 소설 '좀머 씨 이야기'를 읽다가 좀머 씨를 묘사하는 글이 그때 그 궁디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됐다. 좀머 씨는 절대 할아버지와 같은 성추행범은 아니다. 하지만 책 내용의 대부분이 쩔뚝거리며 걷는 그의 모습과 기괴한 행적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으며 오래전 내 엉덩이를 훔쳤던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좀머 씨 이야기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관찰된 좀머 씨의 모습과 주인공의 어린 시절 고민들이 진솔하게 서술되어 있다. 읽다 보면 마치 한 아이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도 가질 수 있는데, 아이의 글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꽤나 길어서 알아서 호흡을 고른 뒤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다소 독특한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구나 어린이였을 때 한 번쯤 겪어보고 가지고 있을 만한 추억담을 떠올리게 된다. 


학교 끝나고 카롤리나와 함께 집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현한 문장
들판을 지나 숲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두 길의 사이는 아주 많이 벌어져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가고 있는 카롤리나를 눈으로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단지 그 애의 웃음소리만은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 남풍이 불어올 때만 웃음소리가 먼 곳에서부터 들판을 가로질러 내게로 와서 집에 갈 때까지 나와 동행하였다. 그렇긴 했지만 우리가 살던 동네에 남풍은 얼마나 드물게 불었던가! <좀머 씨 이야기 중에서>


카롤리나가 주인공에게 다가와서 집에 같이 가겠다고 말한 후 소년의 설렘을 표현한 문장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
그 순간 이후 그날 하루 종일, 아니 그 주일 내내 내 귓가에는 그 말만이 들려왔고, 그 말은 너무나 달콤하게 들렸다. 그림 형제 동화책에서 읽었던 어느 것보다 달콤했고, '지금부터 내 음식을 먹어도 좋아, 내 침대에서 자도 돼'라고 말했던 개구리 왕자에 나오는 그 공주님의 약속보다 달콤했다. '오늘은 빵을 굽고, 내일은 고기를 굽고, 모레는 왕비님께 아기를 갖다 바쳐야지!'라고 말했던 룸펠슈틸츠헨 요정처럼 조바심을 내며 날짜를 세었다. 마치 내 한 몸속에 행복에 젖어 있는 한스와 루스티히 형과 황금 산의 왕이 다 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 <좀머 씨 이야기 중에서>


그 외에도 본인 몸보다 큰 어머니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라든지, 무서운 풍켈 선생님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쩔쩔매는 문장을 읽으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우선 제일 먼저 내게 맞는 자전거를 사주지 않은 우리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어머니를 그렇게 하도록 만든 아버지가 그랬으며, 선 자세로 자전거를 타야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몰래 나를 비웃었던 누나와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들었던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의 개똥도 그랬고, 호숫가 길을 꽉 메워 나를 늦게 도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산보객들도 그랬다. 푸가 형식으로 나를 괴롭히고 모욕을 느끼게 만든 작곡가 헤슬러도 그랬다.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내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올림 바 음 건반 위에 구역질 나는 코딱지를 붙여 놓은 미스 풍켈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좀머 씨 이야기 중에서>


언뜻 보면 작가 유년기의 풋풋한 추억을 옮겨놓은 책인 것 같지만 실제 작가는 좀머 씨와 비슷하다. 장편 소설 '향수'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고 다녔다고 한다.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는가 하면 집에 틀어박힌 채 책을 쓰고 있다는 정도로만 세상에 알려져 있다. 거취를 숨기기 위해 자신에 관한 정보를 흘린 친구들과는 가차 없이 절교를 했고, 누군가 그의 작품에 대해 무슨 대화라도 할라치면 금방 질색하면서 몹시 사나운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아마도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의 세계를 고수하려는 작가만의 노력이 있었기에 독특한 시각으로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들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소년은 자살을 하기 위해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지만 떨어지기 직전 바로 아래에 좀머 씨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를 관찰하다가 이내 자살은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소년이 16살이 되었을 때 그는 좀머 씨의 자살을 지켜보게 되는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마을 사람들이 실종 신고를 하고 신문에도 좀머 씨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2주도 채 가지 않았다.


소년이 좀머 씨의 죽음에 대해 입을 다물었던 이유는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라고 처음으로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애원했던 좀머 씨에 대한 기억과, 아저씨가 물속으로 걸어가며 사라지던 것을 본 충격적인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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