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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Feb 16. 2020

종로 3가 금은방 거리 산책

서울 종로

2019년 이란과 미국과의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고 미사일을 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란과 일을 하는 횟수가 줄었다. 일은 줄었지만 달러와 유로화 가치가 기존보다 상승하면서 나는 집에 있던 얼마 안 되는 외화들을 전부 팔아서 저금했다.


뉴스에서도 치솟는 환율과 금값 상승을 매일같이 보도했다. 평소대로 토요일 오전 뉴스를 보며 커피를 마시던 중 2013년 이후 금값이 최고로 높아졌다는 말에 나는 처음으로 금을 팔아보고 싶었다. 마침 그 날 약속이 있었던 장소도 종로였다. 종로에 나간 김에 집에 있는 금을 팔아서 현금화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묵혀있었는지 모를 금이빨을 아빠께서 팔아오라고 주셨다. 아무리 금이라도 금이빨이라니... 좀 찜찜하긴 해도 돈이니까 팔기로 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종로 3가 X번 출구로 나가면 금이빨만 전문적으로 사는 가게가 있다고 했다. 종로 3가는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뻔질나게 돌아다니는 곳이라서 내 손바닥 안이었다. 나는 핸드백 안쪽 주머니에 금이빨 3개를 넣고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로 향했다.


종로 3가는 웬만한 곳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X번 출구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곳이었다. 종로 3가에 이런 골목이 있었나... 여기 영화 세트장 아니야?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만한 정신없고 지저분한 골목길을 지나가야 했다. 간간이 보이는 골목 식당 유리창에는 칼국수나 팥죽이 20년도 더 전에 시골에서 보던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어찌 되었건 지도를 보며 금이빨 가게를 찾아다녔다. 얼른 팔고 얼른 나와야겠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 가게는 2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없었고 나 혼자 계단을 올라가면 공간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좁디좁은 통로에 뭔지 모를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내가 찾는 곳은 205호인데 보이는 것은 201호부터 204호뿐이고 205호는 있지도 않았다. 그때 뭐하러 왔냐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나도 놀랬고 생뚱맞게 홀로 서 있던 나를 보고 아저씨께서도 놀란 눈치였다. 나는 205호에 금이빨 팔려고 왔다고 얘기하자 따라오라며 간판도 없는 문을 열어주셨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10평 정도의 원룸 사이즈 공간에 오래돼 보이는 소파와 책상, 저울 그리고 큰 금고가 있었다. 꼭 중국 영화에 나오는 아편 거래하는 곳 같았다. 그래도 나는 겁먹지 않은 척 태연하게 들어갔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거 몇 푼 안 되는 거 팔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런데 아저씨께서 문을 활짝 열어두셨다. 아무래도 내가 찜찜해한다는 걸 들켰나 보다... 내가 가지고 온 금이빨을 아저씨께서 돋보기로 보시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실 동안 나한테 알아서 냉장고 안에 음료수를 꺼내 마시라고 하셨다. 하지만 난 마시지 않았다. 왠지 마시면 영영 못 빠져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10평 남짓에 유일하게 하나뿐인 창문을 통해 바라본 종로 3가의 풍경은 색달랐다. 옛날과 현대의 모습이 어우러져있다기보다는 빈부차가 심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더 컸다. 문득 이 아저씨 얼굴을 보니 내가 지금까지 회사나 거래처에서 보던 사람들과는 다른 얼굴이었다. 갑자기 이 아저씨는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구나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아직까지 모르겠다. 인상이 험한 것도 아닌데 이 아저씨 인생을 글로 쓴다면 브런치에 100회 정도는 며칠 안에 거뜬히 쓰겠다 싶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목소리는 조곤조곤하게 말씀하시면서 당최 내 눈을 마주치지를 못했다. 부끄럽고 수줍음이 많아서 눈을 못 마주치는 거랑은 느낌이 다른 거였다. 지금까지 남의 눈을 절대 못 마주치며 얘기를 해서 나를 찜찜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이 아저씨 포함 딱 2 사람뿐이었다. 어찌 되었건 아저씨께서는 내가 알아본 정보와 같은 금액으로 금이빨 가격을 계산해 주셨다.


사기꾼은 아니라는 생각에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는지 나는 아저씨께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먼저 아저씨 책상 한 구석에 수없이 쌓여있던 이빨들이 궁금했다. 분명 여기에 있는 거면 전부 금이빨일 텐데 색깔이 전부 달랐다. 아저씨께서는 노인분들이 금이빨인 줄 알고 팔려고 가져온 건데 금이빨이 아니라서 전부 여기다가 버리고 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서랍에서 금괴 1개를 꺼내서 내 손에 쥐어주시며 이게 금 같냐고 물으셨다. 아마추어인 내가 딱 봐도 금빛 포일을 포장한 형편없는 금괴 모형이었다. 그런데 이 모형 금괴를 장사하던 한국 사람이 중국에서 천만 원에 사 와서 여기다가 되팔려고 가져왔는데 이게 가짜 금괴인 줄 그제야 알고 망연자실해서 한참을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에 있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사람이 속으려면 이렇게 어이없이 속기도 한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내친김에 나는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도 했다. 14K, 18K 그리고 24K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여쭈어 봤더니 실제 24K 반지를 가지고 오셔서 시금석에 살짝 긁은 후 약물을 뿌려서 검사를 하는 시범을 보여주셨다. 내가 이것저것 물으며 신기해하는 것이 아저씨께서도 재밌으셨나 보다. 아니면 지금까지 입에 거미줄을 칠 정도로 같이 얘기할 사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상치 않게 아저씨께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마지막엔 나에게 절대 금에 투자해서 돈 벌 생각은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셨다. 화재에 취약해 보이는 건물과 전깃줄이 실타래처럼 뒤엉킨 골목길을 유유히 빠져나오면서 아저씨 책상 앞에 수북이 쌓여있던 수많은 짝퉁 금이빨이 떠올랐다. 문득 몇 푼을 손에 쥐게 될지 몰라서 이 곳에 들어왔을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금이빨은 종로 3가 대로변에 쭉 늘어져있는 금은방을 가도 팔 수 있다는 것을 며칠 후에 알게 됐다. 찜찜한 골목길로 혼자 가지 말고 종로에 있는 CCTV가 설치되어 있고 현재 금 시세도 모니터로 볼 수 있는 금은방을 방문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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