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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y 02. 2020

먹고, 일하고, 운동하기

플라잉 요가 배워보기 힘들다

수능 끝나고 나서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러 다녔다.


내가 절대 운동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운동회나 체육대회 때 단체 경기에 참가하기 싫어서 몰래 빠지곤 했었다. 체육 실기 점수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수능 끝나고 운동하러 다닌 이유는 헬스장이나 수영장에 있는 샤워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오래된 관사에서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몸이 작고 샤워하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때는 오빠랑 둘이 큰 대야 안에 들어가서 씻는 게 하나의 놀이였다.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 관사에서 씻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거기서 살았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서울에 올라온 이후 관사가 그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관사에서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운동하던 습관이 생긴 덕분에 원룸에 살면서도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을 꾸준히 하고 무료 요가 수업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운동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됐다.


집 근처에 플라잉 요가하는 곳이 생겼다고 해서 어제 드디어 찾아가 봤다. 운동하는 곳이 지하에 있어서 환기는 어떻게 하나 라는 불안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 불안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하에는 요가센터 외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노래방이 있었다.


회사 생활 초창기에 회식에 대한 단속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부서 내에서 회식은 강압적인 분위기였다. 회식을 누구 한 명이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신입이라서 도망치지도 못했다. 술을 술잔에 주면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굉장히 뒤틀린 회식 문화를 겪어왔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회식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많다. 물론 요즘도 워크숍을 명분으로 시골에 내려가면 노래방을 가긴 한다. 기억에 남는 노래방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 한 곳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워크숍은 회사와 연계된 숙박 시설이 있어서 그곳에서 하루 동안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저녁 식사 후에 어르신들은 노래방을 찾아다녔다. 평소 술과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H이사가 찾았던 노래방 문 앞에는 "30세 미만 출입금지"가 빨간 글씨로 쓰여 있었다. 그때 당시 유일하게 내가 30세 나이 제한에 걸렸다. 하지만 노래방을 싫어하는 내가 처음으로 이 곳은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19세 미만 출입금지라는 문장은 봤어도 30세까지 연령을 높인 데에는 뭔가 색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궁금증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 따라서 내려가 본 그 노래방은 확실히 일반 노래방과는 구조가 달랐고 싸구려 분위기도 더 짙은 곳이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돈을 주고 공기도 안 좋은 이런 곳에서 왜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놀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노래방 아주머니께서는 검은 봉지에 귤을 가득 담아서 내 손에 쥐어줬다. 나는 1층으로 올라와서 문 앞에 쭈그려 앉아서 손톱이 노랗게 되는 줄도 모르고 귤을 혼자 까먹고 있었다. 차 없이 숙소로 돌아가기도 힘든 곳에 노래방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노래방과 요가센터가 너무 붙어 있어서 찝찝했다.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플라잉 요가 상담이라도 받아보고 싶었다. 내 또래의 남자 직원 안내에 따라 탈의실과 샤워실 그리고 수업하는 방을 천천히 둘러봤다. 작은 공간에 다소 무리하게 이것저것 기구를 쑤셔 놓아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플라잉 요가만 배워보고 싶은데 그 수업은 회사 다니는 내가 참가할 수 없는 시간대에 있었다. 일반 요가도 다시 기억을 되살려서 해보고 싶긴 했지만 필라테스를 2년 동안 했으니 요가와 색다른 플라잉 요가만 집중해서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직원은 고객의 마음도 모르고 가격 얘기를 먼저 꺼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가격은 5월 4일까지 가격이고 5월 6일부터 가격이 인상될 거라고 한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관심이 있는 척 가격은 얼마 인상될 계획이냐고 묻는 내 말에 얼버무리던 그 직원의 태도는 이 요가 센터는 나랑 맞지 않는다는 확신을 들게 만들었다.


나와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게 어렵다. 직장, 사람 그리고 운동하는 곳까지 어느 하나도 딱 맞는 걸 선택하기가 쉽지가 않다. 직장이야 지금까지 한 곳에서만 일을 해와서 다른 곳이 얼마나 더 좋은지 모르겠다. 요가센터나 필라테스도 주변에 수없이 많은데 막상 가보면 나와 맞는 강사와 센터를 고르기 어렵다. 시간에 맞춰서 아무한테나 배우는 게 아니라 50분을 배워도 나와 맞는 강사와 호흡을 맞추는 수업이 나도 돈을 내며 배우는 보람이 있기 때문에 더 깐깐하게 보게 된다. 물론, 현재 다니고 있는 필라테스 수업에 매우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하지만 역병이 휩쓸고 간 자리에 필라테스 원장님의 생활은 만신창이가 됐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문을 닫을지 말지 굉장히 고심 중이시다. 내가 "부부의 세계"에 나오는 김희애 집 정도만 살아도 필라테스 기구와 소도구들을 전부 비치해놓고 집에서 개인 교습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지금 원장님이 폐업을 해버리면 누구한테 내 몸을 맡기나 싶다.


플라잉 요가는 꼭 한번 배워보고 싶다. 그런데 언제 한번 배워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해먹을 온몸에 칭칭 감고 멋진 동작을 해보고 남들처럼 인증샷도 찍어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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