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품은 꽃

순간이 이야기가 되는 순간

by 방수진

어떤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컴퓨터 화면 속 완성보다, 손끝으로 번져 나가는 선과 색이 더 마음을 끌었다. 손의 감각은 화면 속 수천 픽셀로는 담아낼 수 없는 것을 전했다. 그것은 내면의 솔직함이자, 가장 정확한 언어였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재료가 수채화였다. 단순히 색을 입히는 매체가 아니라, 물과 물감이 만나 번져 나가는 과정은 마음 깊은 곳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맑고 투명한 색감 속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소중한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탁한 수채화는 좋아하지 않았다. 깨끗하고 투명한 색을 원했다. 그 느낌을 얻으려면, 물감을 머금은 붓을 망설임 없이 종이 위에 올려 단숨에 움직여야 했다. 단숨에 내리긋는 용기 속에서만 투명함은 얻어졌다. 원하는 작품을 위해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연습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과정이었겠지만, 붓을 잡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즐거웠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기쁨이었기에 견딜 수 있었고, 그 끝에는 새로운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붓과 물감이 손끝에서 만나 펼쳐지는 그 순간만큼은 삶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었다.


물론 한계도 있었다. 손끝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그 부족함이 배움의 문을 두드리게 했다. 원하는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작가를 찾아 화실로 향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우러 가는 일은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 주는 열쇠였다. 일정 시간을 배우고 나면, 다시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와 붓과 물감을 앞에 두고 손을 움직였다. 배움과 홀로서기가 겹치는 과정에서, 어떤 붓질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어떤 색과 선이 기쁨을 만드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기법을 익히는 일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었다. 반복되는 연습과 질문 속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습관이 자랐다. 어떤 붓질이 힘을 덜 쓰게 하고, 언제 쉬어야 하는지 깨닫는 일은 삶을 배려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었다. 배려 덕분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배움의 길은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었다. 피로를 무시하지 않고 쉬는 법, 작은 성취를 놓치지 않고 기뻐하는 법을 배우면서, 하루하루의 순간이 차곡차곡 쌓여 풍요로워졌다. 꽃잎이 겹치듯, 미세한 성취와 기쁨의 빛이 하루를 투명하게 물들였다. 한계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조금씩 걸음을 내딛는 경험은, 좌절이 아니라 또 다른 배움이 시작되는 자리였다.



방수진 <빛을 품은 꽃>, Mixed media on canvas 15.5x15.5cm, 2025



재능의 한계 앞에서 기쁨은 잠시 옅어졌다.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말했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 한계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생각은 행동을 만들었고, 수채화에서 아크릴화로, 아크릴화에서 유화와 미술사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새로운 분야를 배울수록, 어리석고 교만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웃음이 새어 나왔고, 동시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졌다. 알면 알수록 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깨달음이, 겸손과 배움을 멈추지 않는 마음을 함께 길러주었다.


작은 성취와 기쁨은 그때마다 내 안에서 다시 빛을 일으켰다. 결국 그 빛이 모여 서사가 되었다. 삶의 한순간 한순간이 쌓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책에서 읽거나 영상에서 들었던 “나만의 이야기를 쓰라”라는 말의 의미임을 몸으로 이해했다.


돌아보면, 버려진 경험은 하나도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낙서, 대학 시절의 좌절, 화실에서 흘린 땀방울까지 모두가 지금을 이루는 빛이었다. 그 빛들이 모여 투명한 꽃을 피웠고, 또 다른 배움과 만남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실수하고 웃고, 깨닫고 다시 배우며 쌓인 작은 빛들은 단단한 기반이 되었다.


예술이 주는 기쁨은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간다. 한 송이 꽃이 햇빛을 품듯, 작은 성취와 기쁨이 삶을 서서히 물들인다. 손끝으로 만들어진 색의 투명함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기쁨으로 닿는다. 그 안에서 자라난 빛은 세상을 조금씩 밝힌다. 그렇게, 각자의 서사가 은은한 빛으로 물드는 삶이 이어진다. 배우고, 깨닫고, 한계를 인정하며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경험과 기쁨 속에서, 삶은 조금씩 더 깊고 단단하게 빛난다. 그리고 가끔, 붓질이 삐져나가는 작은 실수조차 미소를 불러오며, 배움의 길을 부드럽게 만든다.





당신의 하루에 건네는 작은 질문


1. 힘들더라도 참고 이어간 연습 속에서 얻은 깨달음은 무엇이었나요?


힘든 순간을 이겨내며 느낀 내 안의 변화:

연습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나의 강점:


2. 자신을 배려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나를 조금 더 편하게 만든 행동:

마음이 지칠 때 나를 위로한 방법:


3. 용기를 내어 시도하거나 새롭게 도전한 작은 시작은 무엇이었나요?


오늘 내가 시도한 새로운 행동이나 선택:

다음에 이어가고 싶은 새로운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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