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봐야 알 수 있는 길
“저는 엄마가 아니에요.”
사춘기 절정기인 막내의 말이 맞다. 순간 마음 한편이 무거웠지만, 나 또한 한때는 같은 이유로 부모님을 밀어내던 시절이 있었다. 말없이 의자에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슬퍼 보였던 걸까. 아이는 “저녁 꼭 챙겨 드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책가방을 메어 학원으로 향했다. 나는 잠시 그대로 앉아 있다가,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공기가 새벽처럼 차갑고 선선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향한 곳은 한강이었다. 출렁이는 강물 위로 비친 가로등 불빛이 물결에 흔들리며, 행복과 불행, 그리고 삶의 무게를 다시 정리하게 했다.
행복보다 덜 불행한 상태에 머물고 싶어 한다. 인생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규칙이 있고, 자신에 대한 요구치도 낮은 편이다. 가족과 친구, 동료와 지인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정립된 생각이 아이들에게도 흘러간다.
아이들이 덜 불행하길 원한다. 행복을 좇는 삶은 가치 있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불행하지 않으려는 작은 결단들이 뜻밖의 행복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선택의 기로에 설 때면 묻는다. “어떤 선택이 너를 덜 불행하게 할 것 같아?” 그 질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불행을 부를 수 있는 요소를 피해 가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조심스레 분배한다. 그렇게 의식적인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는 것은 ‘참고 견뎌라.’라는 말이다. 하지만 깨달음은 늘 순간적이다. 붙잡지 않으면 스쳐 가는 바람처럼 흩어진다. 삶 속에 녹여내려면 매일 자기답게 주어진 하루를 꾸준히 살아내야 한다.
참고 견디는 일은 고통과 가까운 친구다. 고통은 우리를 시험하고, 한계를 마주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자신의 힘을 확인하게 된다. 고통을 선택한다고 해서 기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을 견뎌낸 시간이 기쁨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단단해진 마음으로 바라보면, 칠흑처럼 어둡고 축축한 땅일수록 새끼손톱만 한 빛이 거대하게 느껴진다.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밖이 아닌 안을, 사교가 아닌 은둔을 선택해야 한다. 외부와 타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작다. 작은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잃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면 고통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낙엽만 굴러가도 환하게 웃던 아이에서, 낙엽을 밟으며 묵묵히 걸어가는 중년이 되었다. 주변 친구와 친척들이 하나둘 하늘나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외적 조건에서 오는 만족감은 줄어들고, 내면의 감각과 감정이 주는 만족감은 점점 깊어진다. 재산이나 소유와 같은 외적 조건이 인격과 같은 본질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
물질적으로 안정적이고 나름의 평판을 가진 친구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지루함이었다. 그들을 통해 배웠다. 지루함과 고통의 움직임에 따라, 노년기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고통과 지루함의 줄타기 위에서 어느 위치에 서 있을까. 고통과 가까운 모습이기를. 고통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에는 고통 없는 편안함을 바라면서도 그 안에서 성숙하고 싶어 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고통 없는 상태에 대한 갈망은 골방을 선택하게 했다. 내면으로 향하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과 마주해야 몸과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여유는 혼자 있을 때, 조용한 순간에 누릴 수 있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규칙적인 수면, 균형 잡힌 식사, 적당한 운동이 필요하다. 마음 건강을 위해서는 자기 이해와 수용이 필수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자신을 슬프게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앎은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한다.
무게 중심이 내부에 있을 때, 인생을 자신만의 색으로 물들일 수 있다. 그 색은 자연스레 타인에게 전해진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타인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애쓰는 순간, 자신의 고유한 색을 잃고, 평가에 매인 삶을 살게 된다. 게다가 누군가는 이를 이용하고 조종하려 할 것이다.
큰 기대도 하지 않고, 크게 한탄하지도 않은 채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 인생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미소 지을 수 있기를. 아이들이 남긴 작은 흔적처럼, 나 또한 내 삶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고유한 빛을 발견하며 살아가기를.
당신의 하루에 건네는 작은 질문
1. 타인의 기대 때문에 놓친 선택이나 행동은 무엇인가요?
놓친 순간:
그때 느낀 감정:
2. 오늘, 고통이나 지루함을 견디며 내가 한 선택은 무엇인가요?
선택한 순간:
그 선택이 내게 남긴 깨달음:
3. 나를 위해 한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요?
실천한 순간:
그 행동이 내 하루에 준 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