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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Aug 16. 2018

10시의 글쓰기

두번째

길 위에서 느낀 것들을 그려내고 싶다. 

택시에 앉아 나는 길가의 간판을 천천히 읽었다. 

어릴 적부터 내가 좋아하던 일이다. 

나는 한글을 간판 읽기로 떼었다. 

사촌오빠가 싫어하는 받아쓰기 숙제를 

조르고 졸라 대신 하면서("틀리면 절대 안돼~ 알았지?") 글자 모양을 익혔고

내가 익힌 그림들이 하나하나 음가를 갖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어느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엄마 손을 잡고서

"엄마 저거 도장 맞지?"라고 한 게 내 첫 한글 읽기였다. 

동시에 글을 혼자 읽어낸다는 것이 엄마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글자 벌레처럼 글씨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해독을 기다리는 글자는 나에게 먹이와도 같았다. 

야금야금 엄마를 웃게 만드는 마법의 먹잇감. 


번화한 두 대로 사이에 숨어있는  2차선 길가에는

주로 퇴락한 모텔이나, 자동차 정비소, 그리고 야심차게 오픈한 뜬금없는 베이커리나 젤라또 가게,

우리밀 국수집이나 덜 알려진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택시로 갔던 그 길을 거슬러 걸어왔다. 

낭비와 모험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는 

사람이 없는 젤라또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정오의 햇빛을 맞으며 정비소 설비나,

모텔의 지저분한 휘장을 관찰하면서 지나갈 것이다.

슬리퍼를 직직 끌면서, 

휘파람을 불면서.


내일 아이는 새 학교에 등교한다. 

이제는 꼭꼭 압축 파일로 잠겨있는 고등학교 시절을

아이는 내 앞에 하루하루 유장하게 펼쳐보인다. 


나는 너로 인해 또 살고 있다. 

나는 너로 인해 나로 살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네가 아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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