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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Oct 29. 2019

바람의 이야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거짓이다. 

왜냐면 거기에는 빈 거푸집만 있기 때문이다. 

너로 정해져있는 것이 있다고 믿는 것에서 벗어나라... 


바람을 볼 수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매일 매순간 다가오는 바람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만난 그 모든 바람에게 이름이 생겼다. 

때로는 드물게 지나번에 만났던 바람의 친구나, 딸이나 친척이 오기도 했다. 

세상에는 이미 태어나 죽은 사람과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의 수 만큼의 바람이 있었다. 

"안녕? 부드러운 손과 따뜻한 체온을 지닌 너의 이름은 이제 키오마야. 

지난 번에 다녀갔던 사르치나와는 어떤 사이니? 

나는 너희 둘이 연인이었을 것 같아. 손끝에 묻은 달콤함은 그녀의 체취같거든."

키오마는 고양이의 입김처럼 머무는 내내 아이의 머리칼과 부드러운 솜털을 정성껏 핥아 주었다. 

때로는 한숨을 토하듯 깔깔한 바람도 있었다. 그 바람은 몸에 와 닿을 땐 더웠지만 이내 털을 반대방향으로 제껴놓고 갔다. 아이는 한참동안 살갗을 부비면서 돋아난 소름을 가라앉혀야 했다. 

그 바람은 자낙이었다. 


매일 아침 머리 위로 지나가는 바람은 

죽은 엄마의 옷자락이었기 때문에 아이 말고는 볼 수 없었다. 

엄마는 그런 식으로 아침마다 아이의 이마를 짚어주었다. 

아이는 옷자락에 스치면서 눈을 떴다. 

눈을 뜨기 전 꿈속에서 엄마가 서있던 자리에 바람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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