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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Nov 20. 2016

너를 기억하기

충무로 5번 출구 앞에서 기다리던 너는

밝은 청색에 가는격자 무늬가 있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오른쪽 앞으로 보이는 몇 가닥의 흰 머리를 뺀다면 헤어진 그날 보다 코가 조금 덜 동그스름해진 것 말고 무엇이 바뀐 것인지 알수 없었다.

그렇다. 너는 많은 것을 바꾸어야 했을 것이다.

세월은 우리에게 엉킨 실타래 같은 지난한 길들을 던져놓고 알아서 걸어가라고 한다.

너는 때론 가로등만 깜박이는 어두운 길을 걸었으며 친구없이 정오의 등산로를 오르내렸다..

아버지의 기대를 몇번이나 지나쳐 걸어갔거나

어머니의 걱정으로 되돌아가 맴돌기도 했을 것이다.

매일 아침 같은 책을 들고 신혼집을 나서거나

한해 마지막 날을 혼자 책상에 앉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인생은 청춘이라는 제물을 요구한다.

너는 청춘을 접어 어두운 카메라 상자 안에 보관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고 그날 그대로 붙잡혀 있었다.


그녀가 오른 발을 슬라이딩해서

너의 앞으로 미끄러져 올 때

천개의 창문이 동시에 열렸다.

메꿔 두었던 통로들 사이로

미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녀 뒤로 흰 공작새 깃털이 뻗치거나

여왕이 나타날 때 울리는 트럼펫 소리가 들렸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년을 주기로 다 바뀌는데, 왜 뇌세포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걸까?

한번 카메라에 숨겨둔 장면은 왜 영영 날아가지 않는 걸까?


너는 웃을 때 수십 개의 주름을 만들면서

마음의 파도를 보낸다.

파도가 그녀의 해안에 밀려온다.


이른 아침 파도에 씻긴 해변 어딘가

물거품에서 태어난 여자의 이름이

사랑 말고 또 어떤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


오른손으로 그녀를 쓰다듬고

왼손으로 운전하는 네가

어느 외딴 산모퉁이 길을 돌아 나올 때

유일하게 완벽한 것은

단지 맞잡은 손임을

체온을 느끼는 것은

죄가 없는 완벽한 영혼들이 할 수 없는

유일한 기쁨임을.


36.5 혹은 36.6 외엔  표현할 길이 없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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