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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Feb 10. 2017

Scene #1

첫 장면은 늘 그렇다.

성경의 첫 장면이 사실이거나 설화이거나 계시이거나 그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뒤엉켜 있듯이.

그녀에게는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학원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  아침 공기는 늘 매캐하고 숨을 쉬면 코 뒤로 피냄새가 넘어갔다.  버스 좌석에 운 좋게 앉기를 바랄 뿐이었다. 매일 그 버스를 타고 늦지 않게 학원문을 통과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정류장에 내려서 약간의 경사를 올라가는 길은 회색의 그림이었다. 왼쪽으로는 얕은 담장 위로 철구조물이 비죽비죽 솟았다가 이내 철제 울타리로 바뀌었다. 울타리 너머로는 기차길이 여러 갈래 뻗어 있었다. 기름때와 먼지가 음영을 이루는 길 위로 어느 기차가 지나갈지  알 수 없었다. 그 많은 철길이 있어야 하는 이유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녀는 지친 다리로 그 길을 매일 걸어오르내렸다. 그리고 늘 철길 대신 한발자국 앞의 땅을 보았다.

그 애가 그녀를 본 날은 매일이 같았던 그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기억 속의 시간은 언제나 뒤죽박죽이라 앞뒤를 대어보는 것은 어리석다. 그녀가 그 애를 본 것 역시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반쯤 눈을 감고 다니던 그녀는 사람들 얼굴을 잘 보지 못했다. 새로운 아이가 반에 들어오면 언제나 친구들이 알려줘야 아는 편이었다. 학교가 아니니까 누가 있는지 알 필요도 없었다. 그 아이가 눈에 보인 것이 그녀에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더 신기한 건 그 아이가  때로 같은 버스를 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다. 언제나 버스는 그 아이가 먼저 타있고, 그녀는 나중에 탔다. 그건 버스 노선이나 살고 있는 곳 때문이 아니다. 인생은 그럴 때가 있다. 어떤 차에 동시에 같이 타는 일은 드물다. 그녀는 으레 무엇이든 나중에야 올라 타는편이였다. 버스에 이미 그 애가 타고 있다면 차창으로 그녀를 먼저 발견하지 않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고개를 들어 버스 창문께를 훑어보지는 않았다. 고개를 들어 만일 눈이 마주친다면 그 다음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 어색한 건 같은 정류장에 내려 모른 척하고 걸어가야 할 때였다. 걸음이 빠른 그녀는 앞으로 내달아 그 언덕길을 성큼성큼 걸었다. 그런 날은 괜히 철책 너머 철길도 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도 보면서 걸었다. 남들에게 자연스러운 장면을 연기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둘로 떨어져 있던 것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얘기는 아마 전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혹은 다른 별에서 일어난 일들을 관찰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가 둘이 되어 떨어진 이야기를 들어야 만남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전생을 기억할 수 없었던 그녀는 그날의 만남을 아주 어색하게 맞이 했다. 그녀에겐 멀리 떨어진 별을 관찰할 수 있는 도구도 없었다.

 아니면 늘 별자리를 관찰하고 암호문이나 숫자를 해독하던 그 아이는 비밀을 알고 그날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놀랍게도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별에서 이 별로 오게 된 날을 우연으로 설정한 것은 그 아이가 매우 영악하거나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고 있다는 것으로밖엔 설명되지 않는다. 첫 기억은 그래서 뒤죽박죽이다. 이미 만났지만, 처음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처음은 아직 오지 않았다. 모든 것은 한번에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날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갑자기 다가온 그 애가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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