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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Jun 09. 2023

매일 걸려오는 엄마 전화에 우는 건 나뿐일까



'엄마엄마다 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받을까요?'


시끄러운 전철 안,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꽂은 에어팟에서 딱딱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하철인데...' 고민하다 결국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는 부재중이 되어버렸다. 자취 약 11개월 차, 엄마는 거의 매일 같이 전화를 하고, 나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듯 질문을 던진다. 


"밥은 먹었어?" "저녁은?" "밥은?"

언제나 전화의 첫인사는 나의 끼니를 걱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눈 뜨자마자 냉장고를 열어보던 13살의 나를, 아직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듯 엄마는 매번 전화할 때마다 같은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끼니만 걱정해 주면 좋을 텐데, 그 말 뒤엔 "다이어트는 하고 있어? 살 좀 빼야지~"라는 말을 덧붙여 사람 속을 긁어놓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끼니 걱정이 끝나면 이제 내 인생 앞 길을 걱정하는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일은?" "돈은?" "월세는?" "돈은 언제 모을래?" 

매번 같은 패턴인데, 그래서 내 대답도 AI처럼 정해진 듯 똑같은 말로 반복하는데 엄마는 질리지도 않는지, 혹은 엄마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인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직까지 나는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만 할 뿐 내 눈은 촉촉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건조한 대화가 오고 가다가, 엄마가 툭 - 하고 던진 한 마디에 내 눈은 순식간에 뜨거워짐을 느낀다. 


"너무 힘들면, 언제든 들어와" 

힘들다고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넌지시, 그리고 어쩌면 내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엄마 뱃속에서 10개월을 품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견디며 세상 밖, 빛을 보게 한 엄마의 힘이란 이런 걸까. 매일 듣는 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미세하게 흔들리며 스쳐 지나가는 바람보다 약하게 줄어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엄마는 내가 지금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라는 말이 듣기 싫으면서도, 그 말 한마디에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진다.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으며 "응. 일단 일 년은 살아야 하니까, 너무 힘들면 들어가야지"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그러나 엄마가 딸을 위해 해준 위로의 말을 존중하며 나는 그렇게 엄마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한다. 


한 때, 엄마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며, 나는 이제 착한 딸로 살지 않겠다며 큰 소리로 떠들고 다니던 나는 여전히 엄마라면 안구건조증도 낫게 만드는 울보가 되어버리고 마는 마음만 착한 딸로 남아있다. 내 나이가 30살이라며 사람들한테 "너무 빨리 나이 먹어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라고 얘기하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불쑥 스쳐 지나갔다. 내 시간이 2배 속도라면, 엄마의 시간은 20배는 더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이고 매일 전화로 "엄마도 너무 힘들어서 일찍 퇴근해~ 요즘 기운이 없고 지치네~"라고 말하는 게 빗말이 아니라 나처럼 회사에 나가기 싫어서 하는 꾀병의 말이 아니라 진짜로 엄마의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 거였다. 


착한 딸을 관두겠다고? 앞으로 엄마를 볼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데, 그동안 착한 딸로 좀 살면 어떤가. 엄마는 나에게 한평생 '착한 엄마'가 되려고 몇 십 년을 홀로 일하며 나를 키웠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자취하는 약 6평의 원룸에서 소리 내어 울어본다. 엄마와 같이 살 땐 큰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울면, 그 소리에 한 번 놀라고,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두 번 속상해하며 엄마 가슴에 피눈물이 흐를까 조심하며 울었다. 자취해서 좋은 건 엄마 생각에 울고 싶을 때, 힘들어서 울고 싶을 때, 소리 내서 엉엉 울 수 있다는 거, 그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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