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uman Acts 』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줘요? 왜 관을 태극기로 감싸고요? 그 사람들을 죽인 건 국가가 아니라는 듯이요./17쪽"
『 Human Acts 』
<Human Acts(소년이 온다:원제)>의 첫 장, 동호라는 소년은 쓰러진 친구를 찾고 싶었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형제나 다름없이 지냈던 친구의 시신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를 애타게 찾고 있을 친구의 누나와 가족을 생각하며.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오로지 혼란과 질문이다. 정해진 답이 없는 무한 루프다. 질문의 답을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소년은 무섭고 냄새나는 시신 앞에서 영혼을 느낀다. 초를 피워 영혼의 답답한 숨을 쉬기를 바라면서. 흔들리는 촛불에서 새의 떨림을 상상한다. 그것이 불행인지 희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육신에 갇힌 새의 마지막 비행을 돕고 싶어 한다.
소년의 의문에 또 다른 의문을 떠오른다. 그는 왜 집에 돌아가지 않았을까. 친구의 죽음을 확신하면서도 왜 남아서 또 다른 폭력과 죽음을 지켰을까. 국민을 보호하고 잘 살게 해 주리라 배웠던 국가의 폭력을 목격한 것도 모자라 소년은 보상은커녕 너무도 허무하게 어른들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친구를, 이웃을, 아픔을 겪은 사람을, 옆에서 애쓰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 도왔을 뿐인데. 항복을 하면 살 수 있다고 말한 어른의 말을 들었을 뿐인데. 그래도 어른을 믿었을 뿐인데. 두려워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행이지만 잠시 멈추고 질문을 하면 역사가 된다.
소설 <채식주의자> 맨부커 상(2016)에 이어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에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소년이 온다>의 영문판은 원문의 느낌과 거의 흡사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시선에 따라 독자가 따라가는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이는 목차의 배열만 봐도 확연히 구분된다.
원서(아직도 한국어 원서라는 말이 좋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의 소제목은 각 장의 주제, 중심 심상의 상징물 위주로 제시되어 있다. 어린 새를 접하고 그것의 의미가 뭔지 잠시 상상한다. 검은 숨이 뭔지 정확히는 몰라도 뭔가 부정적이면서도 공포의 기운이 느껴진다.
반면에 영어 번역본은 화자 중심으로 되어 있다. 동호라는 소년, 소년의 친구, 수감자, 공장의 소녀, 소년의 어머니, 원서는 그냥 에필로그라고 되어 있다. 소설의 일부처럼 혹은 결말처럼 보이지만 영어본은 한참 후의 겨울 시점이다. 공통점은 주요 사건이 일어난 해가 정확하게 연도로 표기되어 있어 역사적 흐름과 사실성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문득 이 연도가 원서에도 있었던가 불확실하고 찜찜한 기분이 들어 다시 비교해 보았다. 기억에 없었는데 역시나 정확한 연도가 표기된 장은 없었다. 작가와 번역가가 이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외국 독자를 위한 편집의 차원에서 구성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복잡한 시점과 시기의 선을 그어 주어 좀 더 선명한 선을 긋고 따라 읽는 장점이 있다고 여겨진다. 가령 1장과 2장 제목에 표기된 1980은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시점, 두 소년의 이야기를 예고한다. 한국의 뼈아픈 역사적 배경 속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의미를 명확히 밝힌 번역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주제어 제목은 한국인에게는 충분하지만 한국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연도는 초행길의 지도가 된다. 압축된 시어를 풀어주는 열쇠 역할을 한다.
1980년이 사건의 시작을 알린다면 5장 공장 소녀의 시간, 2002년은 또 다른 펀치를 날린다. 20년이 넘어도 퇴색되지 않는 상처, 말 못 할 공포는 지워지지 않는 문신이 되어 계속 살을 파고드는데 세상 저편에는 상반된 감정이 퍼졌던 때였다. 과거의 시간, 제한된 장소에서 비참한 비명이 짓눌렸지만 20년 후 동일 장소를 포함한 더 넓은 장소에서는 기쁨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월드컵을 치르는 이 도시, 이 나라에 드리웠던 비극은 전혀 없었다는 듯이. 번역자의 고민이 담긴 새로운 제목(예: The factory girl, 2002)은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말에 신빙성을 더하는 장치임을 실감케 한다.
"I waited for a while in doubt and ignorance, of who it was, of how to communicate with it. No one had ever taught me how to address a person's soul.
p.51"
과연 영혼을 다루는 게 가능할까. 영혼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기는 하는 걸까. 마치 죽음 이후의 세계를 목격하고 오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작품의 여러 장 가운데 가장 독특한 시점과 기법으로 독자를 주목하게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죽은 영혼의 시점을 따라가는 이야기와 의식의 흐름은 앨리스 세 볼드 Alice Shebold의 <러블리 본즈 Lovely Bones:살해된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아련한 슬픔과 먹먹함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느낌이다. 육신을 떠난 영혼이 있다면, 너무나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면 이럴 수도 있겠구나, 이런 연유로 세상을 떠나지 못할 수 있겠다는 한탄을 자아낸다. 모든 과정을 화자와 복기하고 재현을 목격하는 독자는 공포가 아닌 안타까움을 느낀다. 아무리 소리치고 발버둥처도 과거를 바꿀 수 없는 타임머신이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잔인함과 고통이라는 인간의 민낯을 읽다 보면 모든 사건이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허구이기만을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으며 그 모든 바람이 와르르 무너진다. 잠시 읽는 행위가 힘겨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이 작품을 쓸 때 왜 그토록 고통스러웠는지, 어떻게 악몽에서도 멈추지 않았는지를 목격하길 바란다. 커다란 추로 가슴과 머리를 맞는 충격보다 더 아픈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한 육체가 다른 육체를 짓밟을 수 있는지, 분명 살아있는데 죽은 영혼을 안고 사는지 묻게 될 것이다. 질문의 무한 루프를 한없이 돌게 될 것이다.
Human Acts 한강 작가 『소년이 온다』 영문판 (미국판) 저자한강출판 Hogarth Press발매 2017.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