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39)

병원

by 도미니

아침 6시에 일어나 6시 15분에 집을 나서면 22분에 출발하는 전철을 탈수 있다. 그렇게 중간에 한번 갈아타고 가면 7시 24분에 자리에 도착한다.


모두들 그렇게까지 일찍 올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정해진 일상이 더없이 소중해서 함부로 어길 수 없었다. 뭐라도 아무 이유가 없더라도 규칙을 지키는 것이 나와 아기를 지키는 데에 아주 중요했다.


조금의 잡념이라도 틈을 비집고 들어오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고, 실제로 그럴 때마다 굉장히 힘이 들었다.


15분만에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나가려면 미리 무엇을 입을 지 잘 때 생각해 두어야 한다. 화장은 늘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되고, 옷은 생각해 두었던 옷을 꺼내 입는다. 1초의 여유나 망설임도 없이 해야 시간을 맞출 수가 있었다. 이따금씩 22분차를 놓쳐 29분에 오는 전철을 타게 되면 시작부터 꼬였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아마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아주 힘든 여름이었다.

회사에선 나이가 찬 수습이며, 남편은 있는 것 없는 것도 아닌 이혼이 진행 중일 뿐인 기혼녀이고, 두달 후에 곧 정발령을 받아야 하는 후보지들은 집에서 어디든 멀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한달여를 시달리다가 나는 결국 또 회사 앞 정신과를 찾아갔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몰래, 누군가를 마주치면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며, 건물을 빠져나가새로 개업한 젊은 여자 의사선생님이 있는 병원으로 숨어들었다.


왜 오셨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사는 것은 원래 이렇게 힘든가요? 하는 말을 오히려 던졌다.


저는 생각이 많아서 워낙 힘들긴 했었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시험도 붙었고. 정말 모든 상황에 마음끝까지 감사한데도.... 감당이 잘 되지 않아요. 제가 너무 못난이인 것 같고, 모든 것이 다 제 탓 같아요. 얼마 전에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경험상 그 생각이 들면 제가 꽤 이상해졌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왔어요 선생님.


아침에 일어나서 입을 옷을 고를 기운이 없다는 것, 때로 멍하니 있다가 전철에서 내려야할 역을 놓쳐 다시 거꾸로 타고 가야하는 상황들. 같은 것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출근 시간은 계속 뒤로 밀려났고, 그때마다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했다.


'별일 아니야. 별일 아니다. 어차피 지금가도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가는 것도 아니야. 정신차리자. 정신차리고 다시 전철을 타고 원래 자리로 가면 모두 해결되는 일이야.'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조차도 힘에 부칠 즈음이었다. 자기 혐오가 시작되면 그 즉시 뭔가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방황할 여유가 없는 나이와 시기에 접어들었다.


절벽 끝까지 밀리지 않기 위하여, 벼랑 끝에 있는 기분으로 병원을 찾아갔다. 이혼이 내 위기 상황의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싫어서 상담의 제일 끝에서야 아주 작은 비중으로 그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혼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다는 말도 붙였다.


내 또래의 의사는 감사하게도 전반적인 내 상태에 관심을 두어 이야기를 해주었다. 뇌파검사를 해서 혹시나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 지 확인한 후, 그러나 잠은 너무 오래 부족한 상태였으므로 잠을 더 자야한다고 했지만, 그건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말하고 항우울제를 받아 중간에 있는 아파트 단지를 건너 오다 문득, 발이 멈추어 섰다.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는 젊은 엄마가 보였다. 초여름이라 아기의 통통한 발이 밖으로 나왔고, 유모차용 모빌과 선풍기, 얇은 담요도 걸려있다. 우리 아기가 썼던 그 브랜드의 같은 모델이었다. 옷은 멋을 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몸을 가리기 위한 역할에 충실한, 지친 얼굴로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아기 엄마를 보니, 저게 바로 내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벗어나길 바랐지만 어느새 익숙해져 있던 내 모습.


남자 사람과의 사적인 대화는 남편과만 나눈 지 10년이 되었다.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와 남편을 챙기는 것이 당연했던 일상이 상상도 못하게 크게 달라져 있었다. 긍정적인 변화라서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지, 이 정도라면 꽤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래서 적응도 이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오늘 하나로마트는 가지가 세일이고, 길건너 마트는 우유가 싸고. 이런 것들만 생각하고 살다가, 셋업을 하고 나선 내 모습이 나도 어색할 때가 많았다. 원하던 일을 하게 되어서 몹시 즐겁고 감사했지만, 아주 자주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음악을 들으며 어떤 춤을 추며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모르겠다


는 생각을 했었다.


직장동료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남편과 나누던 대화보다 몇십배나 더 재밌다는 것, 때로는 남직원과 단둘이 식사를 하거나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당연해진, 달라진 일상이 꽤 큰 죄책감으로 작용했다.


난 이혼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정말 나 좋자고 우리 아기의 미래는 생각도 안하고 시작한 것은 아닐까.


계속 거슬리고 흔들렸다. 아마도 그렇게 찾아온 번아웃이었을 것이다.


약은 한달 정도 먹어야 효과가 느껴질 것이라고 했었는데, 플라시보 효과였는지, 아니면 사람에게 내 바닥같은 상황까지 설명해서 였는지 하루 이틀만에 급격히 좋아졌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보이던 내가 어쩌지 못하는 단점들 대신 잘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되었지.
이 정도면 되었어. 주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거짓말이야. 내 어깨를 으스러지도록 잡고 계신다. 절대로 쓰러지지 못하게,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주시려고 준비를 하고 계신다.


매일 아침 그 모습을 상상하며 심호흡을 하고 전철을 타고 내렸다.

나를 보호하신다. 누구보다도 강하게 날 귀하다 하신다. 정말, 난 귀하고 강하다. 의심하지 말아라.

이렇게 2주 정도가 지났을까. 아이가 다쳤다.

응급실로 가서 아이를 업고 수속을 밟고, 끌어안고 하염없이 처치를 기다리고, 아기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치료과정을 함께 하고, 다시 안고 집으로 돌아와 씻겨 누이고, 다치고 아팠을 마음을 만지고 다음날 또 출근을 했을 때, 변론준비기일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소를 제기하고 1년을 넘게 기다려 겨우 잡힌 변론 준비기일은 공교롭게도, 여름의 끝자락에 태어난 우리 아기의 생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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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에너지가 없었는데.. 이제 조금 기운이 생겨서 시작은 했지만,

이리저리 쓰는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습니다 ^^;;

뭐 항상 그러니까요. 죄송스럽게도 이번 화에도 소송이야기 보다는 제 마음이야기가 많아요. 차근차근히 풀어나가볼게요.

항상, 마음깊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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