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남의 자전거

오늘도 나는 하나밖에 없는 수비 자세를 취한다

by 은륜


"자전거 사러 가자."


자전거 상품권이 생겼다고 했다.

남편은 친정아버지가 신문 보급소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자전거를 가끔 타고 집에서 꽤먼 회사까지 출근하기도 했다. 언덕에서 넘어져 종아리가 까지고 난 후 망가진 자전거를 버리고 아쉬워하던 중이었다.


그는 현명한 쇼핑의 달인답게 이미 사전조사는 마쳤는지 자전거 매장에 들어오자 나에게 몇 개의 자전거 중에 골라보라고 한다. 그는 루이가르노(LouisGarneau)의 하얀색 하이브리드가 마음에 드는 눈치다.


상품권 한 장으로 두 대를 살 수는 없으니 또 허락인지 포기인지 모르는 선택을 말없이 내 앞에 내밀고 있다.

나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당신이 타고 싶은 걸 사."

"그럼 당신은?"


이런 질문이 싫다.

이미 정해놓은 희망사항을 소리 없이 강요하면서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는 듯 예의를 갖춰 포장한 배려는 조용한 공격이다.


오늘도 나는 하나밖에 없는 수비 자세를 취한다.


"나는 상관없어."


이런 수비의 부작용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두꺼운 보호막을 만들어서 짧은 시간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단어들을 선택하게 해주었다.


"일단 빌려서 좀 타보고 나중에 사든 지."


그는 나의 대답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매장 직원이 자전거와 몸을 맞춰보자며 안장 위에 앉아 보라 하자 남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순간 막내딸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냐고 뭐하냐고 물어본다.


"지금 오빠 자전거 사러 왔어."


하고 대답할 뻔했다. 위기의 순간에 3초간 주문을 건다.

'그래, 너는 나의 늙은 아들이야.'


나는 차를 타고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백마 탄 늙은 왕자님에게 외쳤다.


"한 바퀴 돌아보고 천천히 집에 들어와!"


다음 날부터 그는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물어본다.


"자전거 빌릴 사람 없어?"


자전거 같이 타자고 말해놓고 나에게 태울 자전거가 없으니 초조한가 보다.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데 마음이 단단해져 잘 움직여지질 않는다. 자전거 같이 타면 얼어버린 마음이 녹아내릴까?


운동을 같이 다니던 K에게 자전거 이야기를 했더니 빌려준다고 주말에 가져가라며 남의 속도 모르고 부러워한다.


"남편하고 같이 타면 좋겠네."

K는 친언니가 자전거를 꽤 타더니 비싼 걸로 바꾸면서 자기에게 하사한 거라며 장갑까지 얹어준다.


"그래, 내가 또 이렇게 끌려가 본다."


늦여름의 햇살이 따갑게 내려 쬐던 휴일 오후였다. 자전거를 타고 학의천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안양천을 따라가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부딪칠까 겁이 났다.


"오른쪽은 1부터 8까지, 뒷바퀴 속도를 조절하는 거야. 왼쪽은 1부터 3까지, 앞바퀴 속도를 조절하는 거고. 이거는 반대방향으로 이렇게 조절하고. 속도를 높이려면 숫자를 높여."


가다 서다 멈칫거리며 브레이크도 제대로 못 잡고 있는 나에게 그는 기어 사용법을 알려준다. 이런, 자전거가 언제 이렇게 진화했어? 자전거로 동네를 누비고 다녔던 왈가닥 소녀는 어디로 가버리고 그냥 겁 많은 동네 아줌마가 핸들 잡고 벌벌 떨면서 남편의 잔소리를 듣고 있다니.


아, 자존심 상해.

난 남편보다 먼저 운전면허 따고 자동차 몰고 세계여행도 다닌 여자야! 남편보다 운전도 훨씬 잘 한다고!


" 정말, 나 이렇게 까지 하면서 자전거 타야 돼?"



-두 바퀴로 넘다 #2회 끝



- 다음 화 #3 찌그러진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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