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_찌그러진 하트

아는 것은 힘이고 모르는 것은 약이니 약발에 의지해 가보기로 한다

by 은륜


"하트코스 달려봅시다."


남편이 자전거 좀 탄다는 선배 둘과 라이딩을 계획했다며 함께 가자고 한다.


코스가 왼쪽이 찌그러진 하트 모양이라 하트코스라고 부른다고. 학의천, 안양천, 한강, 탄천, 양재천 등 경기도에 흐르는 천변과 서울의 한강을 따라 이어진 자전거도로로 달리는 약 70km 순환 라이딩 코스다.


"난 아직 7km도 달려보지 않았는데?"


아는 것은 힘이고 모르는 것은 약이니 약발에 의지해 가보기로 한다.


이 남자와 계속 살지 말지는 고민하던 하트를 불살라서 갈 때까지 따라가 본 후에 결정하기로. 비장함은 나의 맘이고 그의 맘은 설레었는지 새벽부터 까만 비닐 봉지를 내밀며 웃는다.


"선물이야."


어디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반바지다. 엉덩이에 하트 모양 스펀지가 딱 붙어있다. 자전거 속바지라며 꽤 비싼 거라고 너스레를 떠는 그에게 한 마디 날렸다.


"당신, 내가 자전거 같이 타니까 그렇게 좋아?"


헬멧까지 제대로 갖춰 쓰고 안양천 중간에서 선배들과 만났다. 네 사람이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부까지 나란히 달려간다. 남편은 내 옆에서 보조를 맞춰주며 길을 가르쳐주기 바쁘다.


가을볕을 가르며 달리는 길은 눈부시고 앞서 가는 이들의 헬멧은 멀리서 반짝거린다. 길은 걸을 때와 다른 바람을 보낸다. 그늘 한 점 없는 뜨거운 도로 위에 두 바퀴를 굴려가는 내 종아리가 차갑게 느껴진다.


'열기와 냉기가 함께 느껴지는 회전 운동이 자전거 타기였구나.'


땀을 잔뜩 흘리고 지칠만했을 때 합수부에 도착했다. 탁 트인 한강 옆 공터에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라이더들이 모여있는 쉼터 그늘에 주저앉으니 뭔가 가슴을 두들기는 것 같다.


'이건 뭐지?'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며 가쁘게 쉬는 호흡과는 다르다.


양재천의 갈대는 푸른 하늘 담고 유유히 흐르는 냇물과 춤추고 있었지만, 즐길 수 없는 내 처참한 몸은 완주를 갈망하며 페달에 매달렸다. 앞서 신나게 달리던 두 라이더들은 이제 보이지도 않고, 속으로 무슨 생각 중인지 모를 나의 남편은 50m쯤 앞에서 천천히 달리며 아내의 투혼을 응원하고 있다.


달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두 바퀴는 나의 하트를 터지게 하기 전에 분명 내 허벅지부터 요절내리라. 러닝 머신 위에서 매일 한 시간씩 달리며 자만했던 내 체력은 탄천 합수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바닥이 났다. 이제 절반 왔다. 총 67km. 온 만큼 달려야 집에 간다.


그래, 달리지는 못해도 돌려주고 굴러주마.

쓰러지지는 않을 테다.


자동차로 달려도 길 막히고 차 막히면 두 시간 길이건만, 막힘 없이 뚫려 나를 향해 열려 있는 이 길. 내일모레면 반백 살인 내가 쫄 바지 입고 가을 속을 달리고 있다. 내 힘으로만 달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니 만족스러운 두 바퀴다.


가을 해가 학의천을 적실 때 즈음, 완주를 마친 우리는 구멍가게에서 캔 맥주를 두 개 사서 검은 봉투에 싸가지고 맥도널드에 들어갔다. 진한 트랜스지방으로 급속 충전이 필요했다. 얼음을 가득 채운 사이다에 맥주 칵테일을 만들었다.


'아, 사람들이 이 맛에 마라톤을 하는구나. 하루키가 이래서 달렸구나.'


허벅지의 강렬한 통증과 땀과 먼지에 범벅이 된 찌그러진 모습을 안주로 삼아 건배했다.


찌그러진 우리 둘의 하트를 다시 살린 하트코스를 위하여!


-두 바퀴로 넘다 #3회 끝



- 다음 화 #4 허벅지가 알을 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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