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_일기예보를 무시하다

어느 이른 봄 섬진강자전거길이야기 하나

by 은륜



남쪽은 봄 일 줄 알았다.

내일모레면 삼 월이니 하룻밤 섬진강을 끼고 달려보자.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전라북도까지 이동할 계획을 세웠다.


임실군 강진면에서 시작되는 섬진강 자전거길은 순창, 곡성, 구례, 하동군을 거쳐 광양시에서 끝난다. 공식 거리는 섬진강 생활체육공원인증센터에서부터 측정하여 전남 광양시 배알도 수면 공원 인증센터까지 총 148km. 시속 20km로 9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야 끝낼 수 있는 코스다.


우리는 숙박을 위해 곡성 시내까지 들어가야 하고, 귀성을 위해 배알도 수면 공원에서 광양 버스터미널 이동까지 계산하면, 이틀 동안 라이딩할 거리는 총 170km.


일주일 전에 고속버스표를 예매하고 기다리는데 출발 전날 오후부터 눈발이 날렸다.

"눈이 온다네, 내일까지." 일기예보는 정확했다.


2월의 마지막 날, 아침 8시. 출근하던 사람들이 자전거 앞에서 헬멧을 쓰고 있는 우리를 흘깃 본다.

다시 추워진 아침 공기에 싸늘한 눈치까지 더해져 체감온도 영하 10도.


어제 오후 내린 눈 때문에 집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길에 살얼음이 덮여 있다. 인도 위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미끄러졌다. 순간 오른쪽으로 자전거를 던지고 왼쪽으로 몸을 피했다. 땅 위에 엎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았다. 자전거는 가로수를 들이받고 쓰러져 있다.


잠시 후 앞서 가던 남편이 넘어져 자전거 밑에 몸이 깔렸다. 다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멋쩍게 웃는다.

"갈 길이 먼데 말이지." 만만하지 않은 길에 출발이 녹녹하지 않다. 마른 길을 골라 자전거를 끌다, 타다가 하며 터미널에 도착했다. 평소 10분 이면 갈 수 있던 길을 1시간 만에 왔다.


길은 길인데 길이 아닐 때가 있다.


고속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실었다.


버스는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소박한 식당 두 집, 슈퍼마켓 한 곳뿐인 강진 정류장에 도착했다. 3 시간 동안 이어폰 꽂고 클래식 음악으로 느긋하게 즐긴 창 밖 눈 풍경은 호사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격하게 마중 나와 고개도 못 들게 한다. 버스는 우리 두 사람만 떨어뜨리고 순창을 향해 가버렸다.



"밥부터 먹자."


다슬기해장국을 먹으며 여정을 점검하는데 주인아저씨가 소박한 미소를 얹어 마요네즈를 아낌없이 부은 샐러드를 식혜와 함께 우리 앞에 슬쩍 내려놓는다.


"그래도 어제보다 나아요. 어제 온 손님들은 죽을 맛이었다네요. 남쪽 낮은 데에서 올라오려니 그렇지. 또 어제는 비가 엄청 내렸거든."


눈바람이 잠시 졸고 있는 틈에 자전거에 올라탄다. 안장이 얼음덩어리 같다.


달려가는 길은 차갑고 달콤하다.

겨우내 달리지 못했던 바퀴들은 물웅덩이를 지나며 흙탕물을 튕겨도 신났다.


진뫼마을에 있다는 김용택 시인의 생가와 영화 촬영지였다는 구담마을도 지나쳐 아쉽다. 하늘이 수상한 구름을 자꾸 남쪽으로 보내고 있다. 언제 눈보라가 깨어날지 모른다. 벌써 3개의 다리를 건넜다.


섬진강 자전거길 1코스는 치즈로 이름난 임실과 고추장으로 이름난 순창을 세월교로 넘나들며 지난다. 세월교는 마을의 다리 이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세월교(洗越矯: over flow bridge)는 콘크리트로 제방보다 낮게 만든 교량이다. 다리 위에 난간이 없어 홍수 때는 물이 교량 위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몸이 가려하여도 물이 허락하지 않으면 가지 못한다. 봄을 기다리는 물은 부드러워 모두를 다 넘겨줄 마음이다. 물소리가 발효균을 감싸고 돌보는 마을들을 키운다. 생명을 키우는 강의 힘이 다리를 넘는 두 바퀴에 전해졌다.


#14_어느 이른 봄 섬진강자전거길에서_이야기 하나 끝

다음화 #15_계곡을 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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