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범주 안에 배려는 없다
끓여놓은 보리차가 떨어졌다. 갈증에 목이 타면 뇌가 바짝 마른다. 싱크대 수도꼭지에 급하게 입을 댔다. 버벅대는 화학기호 같은 수돗물이 씁쓰레하다. 오래 말하지 못한 단어를 꿀꺽 뱉는다. 삼킨 물과 단어가 섞여 쓸려간다. 개수대에서 회오리가 된다. 시타, 히말라야 시다. 그리움의 소유를 그리워한다.
시골의 사계는 공평하지 않았다. 굵고 긴 겨울은, 자주 그리고 심하게 눈이 왔다. 밤새 쌓이면 거리가 온통 잠겼다. 의료원 앞 신작로에는 키 큰 가로수가 있었다. 눈 내린 다음 날이면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로 변했다. 읽지 않은 동화 속 북구의 마을처럼 신비로웠다.
그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카페 벤허의 2층에서 갓 배운 아이리시 커피를 만들던 날이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고시 공부를 하던 선배와 함께였다. 통유리 너머를 바라보던 형이 불쑥 물었다.
"저 가로수 이름이 뭔지 알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에 창밖을 본다. 낮은 눈높이에, 키가 커 눈에 띄지 않던, 나무는 가로수가 아닌 풍경처럼 보였다. 기억이 섞인 풍경은 해답 없는 주관식 문제 같다. 사지선다의 정답을 골라낼 이유가 없다. 조금 큰 크리스마스트리, 기억과 시간과 감정이 적당히 뭉개진, 주관식 같은 풍경의 일부.
"히말라야 시다라는 나무야"
형의 말에 단어를 우물거린다. 히말라야 시타, 시타, 히말라야 시다. 그리움이 객관식으로 바뀐다. 기억을 꺼내 퍼즐을 맞춘다. 히말라야 시다를 기억의 중앙에 놓는다. 앞뒤와 좌우로 재배열한다. 기억과 그리움은 내 몫인데 정답을 찾으려 한다. 찾지 못하면, 그리움 속 풍경에 나만 사라질 것 같다.
그리움의 소유를 생각한다. 가늘게 연면하는 기억 속에 엉성하게 뭉개진 덩어리를 그리움이라 하자. 나의 기억 안에 있는 그리움은 나의 것일까. 아니면 내 기억의 것일까. 가로수와 다시 배열한 히말라야 시다, 같지만 다른 그리움인 걸까.
그리움의 소유라는, 문제 앞에 서성이던 기억을 떠올린다. 숙취가 격발시킨 그리움의 갈증에 뇌가 마른다. 그리움은 공유되지 않는다. 나눴을 거라 믿을 뿐이다. 그리움의 범주 안에 배려는 없다.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리움의 소유조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