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뜽삼이 May 31. 2023

리더의 반응

H님과 일 얘기를 하기 위해 6층 카페에 다녀왔다.

갔다와서 팀장님은 아까 전 나에게 요청하신 업무에 대해 질문하셨다.

"그 일정 확인 요청한 것은 어떻게 됐나요?"

나는 미처 그 일을 다 끝내지 못하였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확인하고 있는데 아직 다 끝내진 못했습니다."

.

.

.

그의 침묵이 이어진다.

급한건가? 싶어서 내가 뒤이어 물었다.

"그 일을 언제까지 해드리기를 원하시나요?"


그런데 그 질문이 그의 뇌에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 모양이다.

그것은 이어지는 그의 대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9월까지니까, 그 전까진 해야죠. 그걸 알면 제가 애초에 묻질 않았겠죠."

정확한 대사가 기억나진 않지만,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벙쪘다.

'내가 뭔가 잘못된 질문이라도 한 것인가?'

여기서 2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1. 그가 정확히 들었으나, 내가 의도한 대로 질문이 입력되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해석'된 질문만 입력된 것이다.

2. 그는 애초에 내가 말한 걸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내가 말한 것과 다른 것을 듣고는 그에 대해 반응한 것이다.

그 외 또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1번과 2번 둘 중 어느 것에 해당하든, 그가 나에게 보인 반응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의 의사소통 능력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일 만한 질문을 내가 하겠는가?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다시 한번 물어보면 될 일이고, 아예 제대로 듣지 못했어도 다시 한번 물어보면 될 일이다. 만약 그의 내면에서 어떠한 감정이 올라오는 걸 감지했다면 그 감정을 얘기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제 3의 가능성이 있다. 그는 내가 H님과 6층 카페에 가서 일 얘기를 하고 온 것 자체에 대해 이미 불만을 가지고 있었거나, 혹은 그가 지시한 일을 그가 기대한 시간 안에 내가 끝내지 못한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느끼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의 반응을 접하는 순간 나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긴장했다. 그래서 온몸이 쫄깃해지는 걸 느꼈는데, 그 와중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나의 의도를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제가 여쭤보려고 했던 것은, 그 일정을 언제까지 확인해서 팀장님께 말씀드리기를 원하시는지? 였습니다."

이러한 나의 반응에 대해 꽤나 대견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좀 더 성숙한 사람의 반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정정 질문에 대해,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되는 대로. ASAP" 이라고 얘기하며 회의실을 나갔다. (아마 화장실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기계와 달리 사람은 STOP이라는 명령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한다. 파일이 저장되는 상황은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STOP이 너무 늦게 실행되는 것은 짜증스러워 한다. 빅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령을 누군가가 이해하고 따르는 행운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반면에, 명령이 잘못 해석되었을 때의 당혹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빅게임으로 자신을 이기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제럴드 와인버그, 「테크니컬 리더」


-23.05.31


작가의 이전글 무엇이 깨달음을 불러일으키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