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신문 읽기였다.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신문 읽기가 내 유일한 사치’라고 할 정도로 단정하게 접힌 신문을 한 장 한 장 펼쳐가며 읽는 것을 좋아했다. 문을 열어 바깥 세상의 아침 첫 공기를 마시며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신문의 질감도 사랑했다.
몇 개월 전부터 아침이 달라졌다. 눈을 뜨면 짧은 기도문을 외우며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몸을 옆으로 굴려 조심스레 일어나 거실로 나가 요가 매트를 깔고 가벼운 요가 동작을 한다. 대체로 ‘초보자도 쉽게 하는 요가 동작’, ‘왕 초보 요가’등 30분 내외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동작을 따라 한다. 그래야 성취감이 높아 매일의 루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아침 일기이다. 10줄 정도의 간단한 일기 밑에 감사 일기를 덧붙이는데 보통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글쓰기가 몸에 베이도록 부담 없이 쓰자는 게 아침 일기의 목표다.
첫 책을 내던 지난해에는 책 콘셉트를 잡고 목차를 정하고 글을 쓰느라 글쓰기가 다소 무거웠다. 그렇게 첫 책을 내고 나니 좀 쉬고 싶었다.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좀 버거웠다. 그래도 글쓰기를 쉴 수 없다 생각해서 시작한 것이 매일 5분 글쓰기, 곧 일기였다. 그냥 부담 없이 쓰자는 것인데 한 지인은 자신의 부담 없는 글쓰기를 ‘발로 글쓰기’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야 순서는 밀렸지만 여전히 애정 1순위인 신문 읽기로 들어간다. 신문을 읽기 전 식탁 위에 그날 먹어야 하는 약과 건강식품 등을 꺼내 놓는다.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리는 일이 잦다 보니 하루 분량을 챙겨 놓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약간의 과일과 견과류, 몇 조각의 떡으로 하는 아침 식사가 내 신문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이렇게 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운동, 글쓰기와 글 읽기, 식사와 함께 약 복용이 끝난다.
자연스럽게 굳어진 이 루틴은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나이가 들면서 여러 질병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뭔가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올해 구순이신 아버지가 삶의 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보며 아버지의 아침을 살펴보았다.
아버지의 아침은 새벽 3시에 시작한다. 아버지의 아침 기상 시간이 엄마 말로는 평생 변함없었다 하니 아버지가 올해 구순인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40년은 굳어진 기상 시간이다.
아버지가 사는 아파트 내에 아버지의 걷기 길이 있다. 아버지가 직접 만들었다는 워킹 로드는 동 대표를 하던 해에 직접 호미를 들고 박혀있는 돌과 발에 걸리는 방해물들을 캐내어 만들었다 한다. 아스팔트를 피해 나무가 심어진 흙바닥 길 300미터를 걷기 좋은 길로 만든 것이다. 워킹 로드를 만들기 전엔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이 아버지의 걷기 길이었는데 아파트 안에 300미터의 워킹 로드를 만든 후에는 그 길을 걸어 아침 걷기를 하게 됐다.
직접 만든 워킹 로드 왕복 600미터를 8바퀴 걷는 게 아버지가 새벽에 맨 처음 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9바퀴를 도는데 한 시간이 걸렸는데 요즘엔 한 시간에 8바퀴를 돈다 하니 아버지의 걸음이 조금 느려진 것이다.
“아버지, 그래도 한 시간 걷는 것엔 변함이 없으니 잘하시는 거예요.”라고 아버지를 응원한다. 얼마 전부턴 아파트 내에 운동 기구도 몇 개 설치되어 철봉 매달리기도 하신다니 구순 나이에 운동량을 늘리신 셈이 된다.
아침걷기기 끝나면 아버지의 냉수마찰이 이어진다.
샤워기를 세게 해서 찬 물로 온 몸을 마사지하듯 한다. 한 여름에도 더운 물 샤워를 하는 나는 따라 할 수 없는 아버지만의 건강 비법이다. 냉수마찰은 계절과 상관없다. 그날의 컨디션에 관계없이 평생을 해 오셨다. 어릴 때 보았던 수돗가에서 찬물로 등목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겐 냉수 마찰의 시작으로 그려진다.
그리고는 아침 기도시간이다. 가정을 위해, 자녀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병자들을 위해, 지구환경을 위해, 기도서의 모든 기도문을 암송하듯 하는 아버지의 기도는 족히 30분은 걸린다.
다음은 족욕이다. 아버지 발엔 오랜 세월 족욕의 흔적이 발목양말을 신고 있는 모양으로 남겨져 있다. 나는 유난히 차가운 아랫배에 수시로 뜨거운 찹쌀 베개를 올려놓는데 그곳의 살짝 바뀐 피부색을 보면 아버지의 발목양말 무늬 피부색과 같다. 온도에 민감한 피부가 아버지를 닮았다.
이렇게 운동과 냉수마찰, 기도, 족욕이 끝나면 새벽 미사에 가신다. 사제가 돼야 할 분이 장가를 들었다는 엄마의 말을 참고로 하지 않더라도 아버지는 평생 새벽 미사를 하셨다. 그렇게 미사까지 4시간 가까운 아침 루틴이 끝나야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 쿠커에 물 끓이고 계란을 삶아 내신다. 세끼 식사는 늘 정해진 양을 일정한 시간에 드신다.
젊은 사람도 웬만해선 엄두가 나지 않는 한겨울 새벽 운동이 걱정이 돼서 “아버지, 왜 낮에 햇빛 보시면서 운동하지 컴컴한 새벽에 하세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낮에는 자칫 일이 생기면 운동을 놓치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해놓는 거야. 중요한 일일수록 일 순위로 해 놓아야 돼.”
직장생활을 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시간이 여유롭지만 굳어진 일상의 습관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운동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안다. 균형 잡힌 식사가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신앙생활도 규칙적인 기도가 쌓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는 ‘아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에 힘이 있다’는 삶의 원리를 평생 지키며 사셨다. 그리고 구순의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 그 루틴을 지켜 나가는 용기를 잃지 않으셨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 아버지를 지켜보면 내가 살아야 할 미래의 시간들이 보이기도 한다. 얼마 전 병원에서 근육이 부족하다고 단백질을 보충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아버지를 보니 아침마다 계란을 삶고 계셨다. 아버지를 보며 건강관리법이 간단하고 소박하다는 데에 놀라곤 한다. 그 간단함 속에는 아버지의 놀라운 성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의 노년은 내리막길이 아니다. 구순의 나이가 되도록 편안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은 자율적이고 꾸준한 노력 덕분이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소박하게 해 온 건강관리로 주체적인 노년을 보내고 있다
환갑이 된 딸은 여러 가지 건강 지표들이 내리막이다. 골 밀도가 주사치료로도 좋아지지 않는 나에게 의사는 통상 이럴 때는 식사와 운동이 문제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새벽 루틴을 가만히 떠올려 보며 나에게 적용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요가도 하고, 계란도 삶고, 가까운 산에 못 가는 날에는 동네 아파트 산책이라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