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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 넓은 아빠

인생수업

by 안상현

태권도 수업을 마치고 나온 딸아이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내 손을 잡는다.

“아빠, 나 사실 좀 속상했어.”

무슨 일인지 묻자, 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오늘 어떤 친구가 나한테 물었어.

‘너희 아빠는 왜 이마가 이렇게 넓어? 머리도 없잖아?’”

그런데 그 말이 장난처럼 들리지 않고, 좀 놀리는 것으로 들린듯했다. 말을 마친 딸의 얼굴엔 속상함, 부끄러움, 그리고 아빠를 향한 안쓰러움으로 복잡한 표정이었다.


나는 딸의 손을 꼭 잡은 채,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유라야, 사람은 다 달라.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얼굴이 까만 사람도 있고, 하얀 사람도 있어.

그리고 머리숱이 많은 사람도 있고,

아빠처럼 적은 사람도 있지.

겉모습은 정말 다양하단다.

겉모습으로 놀리거나 평가하는 건 예의가 없는 거야.

혹시 그런 친구가 또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친구랑은 굳이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괜찮아.”

딸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우리 아빠”가 누군가에게 놀림거리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이 아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머리숱이 많지 않았다. 스무 살이 넘으면서 이마는 제법 넓었고, 서른을 넘기며 머리카락은 점점 가늘어졌다. 그러다 보니 50대가 된 지금, 거울을 보면 ‘아, 이마가 참 탁 트였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저녁을 먹으며 딸과 이 이야기를 나눴다. 딸은 여전히 조금 서운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유라야, 아빠 머리숱이 적은 건 사실이지만,

아빠만큼 재미있게 놀아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게다가 아빠는 잘생겼잖아.”

그 말에 딸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에게 있어서 ‘아빠의 외모’보다 중요한 건, 함께한 시간, 평소 자주 들려주는 말과 태도다. 오늘 글을 쓰며 한 가지 중요한 가치를 되새긴다. 사람의 가치는 겉모습에 있지 않다는 것을. 진짜 멋은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이마가 넓어질수록 나는 더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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