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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 친구는 나만 미워해요?

인생수업

by 안상현

“아빠, 나랑 원래 친했던 친구가 요즘 나만 미워해.”

딸아이가 털어놓은 말이었다. 혼자 앉아 간식을 먹던 아이는 평소보다 말이 적고, 말투는 무거웠다. 나는 옆에 조용히 앉아 물었다.

“그 친구가 뭐라고 했어?”

“아무 말 안 해. 그냥 내가 다가가면 모른 척하고,

다른 애랑만 얘기하고, 나만 피하는 것 같아.”

아이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엔 서운함과 당혹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내가 뭔가 잘못했나 돌아보게 된다. 특히 어린 아이일수록 그 마음은 더 크다. “나한테 왜 그럴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딸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유라야, 어떤 사람은 이유 없이도

다른 사람을 멀리하거나, 갑자기 거리를 두기도 해.

그건 유라 때문이 아닐 수도 있어.

그 친구 마음에 다른 감정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어.”


딸은 의외로 금방 받아들였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계속 말 걸어야 해?

아니면 나도 모른 척해야 해?”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라야, 관계도 마음처럼 ‘거리’가 필요해.

가깝게 다가갔다가 조금 멀어질 수도 있고,

잠깐 떨어져 있다가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어.

마음 상태는 날씨와 비슷해.

그 친구는 지금 흐리거나 비가 오는 중일지도 몰라.”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도 얼마 전 어느 학부모에게서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 '지난번엔 살갑게 인사 나누었는데, 왜 이번엔 아는 척도 하지 않은 채 다른 부모와만 이야기를 나눌까?'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유라의 마음이야.

유라는 그 친구를 정말 좋아하고 걱정되는 거잖아.

그 마음은 진짜니까, 억지로 무시하지 않아도 돼.

그렇다고 계속 다가가서 스스로 상처받을 필요도 없어.

그럴 땐, ‘조용히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며칠 후, 딸은 다시 그 친구와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우연히 눈이 마주친 순간

그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나 요즘 좀 마음이 안 좋았어. 너한테 미안해.”

딸은 그 말을 듣고 그냥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나누었다고 한다.


아이의 마음이 조금 더 자란 느낌이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와 생각이 어긋나고 서운하고, 미움을 느끼는 경험을 한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를 책망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나 때문’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수많은 감정이 오가고, 그 감정은 꼭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누가 널 좋아하느냐로 결정되는 게 아니란다.” 관계를 잘 맺는다는 건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게 아니라, 서운함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적당한 거리를 지킬 수 있는 용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관계를 맺는 것도, 놓아주는 것도, 모두 인생의 중요한 수업이다. 그리고 그걸 이렇게 어린 나이에 조금씩 배우고 있는 이 아이와 걷는 하루하루가 참 고맙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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