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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하지 말라던 아빠, 주식하라 말하는 아빠

인생수업

by 안상현

딸아이 이름으로 된 주식계좌가 있다. 그녀가 일곱 살이던 해, 나는 그 계좌를 만들었다. 지금은 열 살이 되었고, 3년째 꾸준히 미국 ETF에 투자하고 있다. 매달 소액이지만 일정 금액이 들어간다. 명절 친척에게 받은 세뱃돈도 물론 투자한다. 딸은 투자가 정확히 뭔지 모르지만, “주식에 네 돈을 넣으면 그 돈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는 말에 눈을 반짝인다.


우리 부모 세대는 늘 이렇게 말했다.

“사업하지 마라.”

“주식하지 마라.”


그 말에는 이전 세대가 겪은 아픔이 녹아 있다. 불안정한 시장, 잃어버린 돈, 빚의 무게, 그리고 가족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었던 경험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안정’을 가르쳤다. 직장을 가져라, 남들이 가는 길을 가라, 모험하지 마라.


하지만 나는 딸에게 정반대로 말한다. “사업해라.” “투자해라.” 앞으로 그녀가 살아갈 세상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고, 앞으로는 2~3개 직업을 동시에 갖게 된다. 게다가 잠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갖지 않으면, 평생 일터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딸에게 돈보다 사고방식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다. 다른 말로는 부자 마인드다. 어떤 사고를 하느냐가 결국 어떤 삶을 살게 하는지를 내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안전한 길’을 걸으려 했다. 좋은 직장과 정해진 월급에 안심했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회사와 시장은 급변했고, 코로나 시점을 계기로 내 안정은 순식간에 흔들렸다. 그때 깨달았다. 진짜 안전은 ‘사고의 유연성’에서 온다는 걸.


그래서 나는 딸의 계좌에 미국 ETF를 사 모은다. 단지 돈을 불리려는 게 아니다. ‘돈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어릴 때부터 몸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나는 딸에게 말한다.


“유라야, 주식은 돈을 불리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세상을 읽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야.

회사가 왜 돈을 버는지, 어떤 사람들이 가치를 만드는지,

그걸 이해하면 네가 어떤 일을 해도 길을 잃지 않을 거야.”


딸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세상이 커질수록 내 ETF도 커진다’는 감각을 자기만의 언어로 조금씩 배울 것이다. 가끔 상상한다. 십 년 뒤, 스무 살이 된 딸이 자신의 투자 계좌를 확인하는 모습을. 그녀의 계좌 속엔 단순한 수익률만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훈련, 기다림의 미학,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주식으로 돈을 벌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대신 시간의 의미를 아는 사람, 경제의 흐름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우리 부모 세대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며 안정에 머물렀다. 하지만 우리 세대의 자녀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며 성장해야 한다.


딸이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아빠, 주식은 언제 팔아야 해?”

“네가 돈이 필요할 때만 파는 거야.”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직업보다 사고력이, 돈보다 판단력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딸의 계좌에 한 주를 더 산다. 그건 주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수업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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