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정신없이 결혼식을 마무리한 후 우리는 신혼집에 와서 정신줄을 놓고야 말았다. 둘은 한동안 침대에 누웠다. 말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말할 수도 없었지만 그보다 서로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는 듯했다. 약속이나 한 듯.
1시간 정도 흘렀을까. 뒷정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부터 조용히 일어섰지만 아내(그 당시로는 이 말조차 어색했지만)에게는 조용하지 않았는지 함께 일어나고야 말았다.
가장 먼저 한 것은 결혼식 정산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가장 예민하면서 기대감이 큰 순간이기도 하지 않은가.
각자의 방명록을 살펴보며 연락드려야 할 분들을 확인하고 감사함을 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연히 봉투도 확인했다. 참고로, 결혼식 축의금 봉투를 꼼꼼히 체크하고 봉투는 보관하길 추천한다. 나의 경우 약 3년이 흐른 고이 모셔만 놓았던 봉투를 확인하던 중 뜻밖의 수확(?)을 얻었으니 말이다.
정산 및 연락 후 우리가 할 일은 다음날에 있을 신혼여행 꾸러미를 챙겨야 했다. 미리 중요한 것들은 캐리어에 담았었지만 나머지 옷가지나 필요용품들을 체크해야만 했기에 각자의 가방을 꾸려야 했다. 신혼여행 담당이었던 나로선 여행책자를 비롯해 여행사에게 받았던 자료, 티켓 등등을 챙기기 분주했었다. 생애 첫 유럽여행이라는 점에서 얼마나 긴장하면서도 설렜는지 아마 경험자들은 알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다음날이 밝았고 2시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약 12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인 파리.
수화물 코너에서 우리의 짐을 기다리던 중 내 캐리어가 나타났고 무거운 짐을 집어 들고 바닥에 세웠는지 왠지 모르게 제대로 서질 않았다.
아래를 살펴보니 캐리어 한쪽 바퀴가 부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다음날 여행사에 연락해보니 보상받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답변에 한 번 더 마상.
찝찝하고 불편한 마음과 짐을 끌고 공항 밖에 나왔는데, 후들후들하게 추운 날씨 탓에 한껏 움츠린 채 버스를 기다렸다. 기온은 우리나라와 비슷했지만 체감온도는 훨씬 추웠다.
이윽고 도착한 공항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몽마르나스역으로 출발했다.
난생처음 외국의 버스를 타는 동안 느낀 점은 좌석 간 간격이 매우 좁다는 점이었다. 덩치가 상대적으로 큰 유럽인들에겐 터무니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잠시 버스를 타는 내내 첫 여행지의 설렘이 피곤한 나를 깨웠다. 창밖에 보이는 파리의 야경들이 이국만리에 온 것을 실감 나게 했던 것이다. 떠올려 보라. 생애 첫 외국을 본 사람의 행동이 어떠할지를. 나로선 중1 때로 돌아간 듯했다. 그 당시 기차 안에서 처음 63 빌딩을 봤을 때의 그 신기함을.
좌우간 야경에 넋이 나간 사이에 어느새 버스는 몽마르나스역에 다 달았고 그때부터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랐다. 숙소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여행 초보인 나만 믿는 상황에서 길을 헤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해야만 했다. 다행히 길눈이 밝고 지도도 손쉽게 보는 능력 탓에 큰 어려움 없이 미션을 수행할 수 있었고 가는 길 동안 아내의 입맛을 채워 줄 중국집이나 일식집을 찾는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체크인을 한 후 방을 배정받아 입실했는데,
생각보다 좁은 방에 실망,
침대 머리맡에 화장실에 있다는 것에 또 실망,
무엇보다 물 한병(200ml)이 우리 돈 5천원이라는 것에 더 놀람.
실망과 놀람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장시간의 비행으로 힘든 몸과 여러모로 상처 입은 마음을 끌어안고서
꿈에 그리던 신혼여행에서의 로맨틱한 첫날밤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기절하듯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금도 잊히지 않은 신행의 첫날밤이라 뜻깊은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첫 단추를 잘 꿰야만 하는 법이라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