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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nswer Oct 16. 2020

부족한 정보가 가져다준 풍성한 추억

파리

우리는 11시간 이상의 장시간 비행에 온몸에 피곤에 찌들었기에 숙소에 들어오면 바로 잠이 올 줄 알았었다.

하지만 시차 문제로 함께 뜬 눈으로 밤새를 샐 수밖에 없었다.

함께 낯선 곳에서 있자니 믿기지가 않았다. 결혼 준비 과정에 있었던 이야기, 결혼식 때의 기분, 내일부터 시작되는 신혼여행 이야기 등등 갖가지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었다.

이윽고 날이 밝아왔고 파리에서의 첫 끼니를 챙겨 먹고서 부랴부랴 숙소를 나섰다.
 첫날 일정은 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시작으로 튀르리 정원,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바토무슈 투어 등 다소 힘든 계획을 소화했기에 갈길이 바빴다.
숙소를 출발해 몽파르나스 역까지 걸어오면서 신혼여행의 시작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분명 어제까지는 지구 반대편에 있었던 우리가 이곳 파리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마치 차가운 파리의 공기가 허파를 거쳐 온몸에 이곳의 낯섬과 설렘, 기대를 전달해서 가슴이 터질 듯 벅찬 기분이었다.

그렇게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드디어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후문 쪽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본격적인 메인 지역으로 다가선 순간 엄청난 대기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긴 줄은 머리털 나고 처음인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지금 같았으면 포기했을 법도 했겠지만 “신혼여행”이라는 호재(?)가 크게 작용한 탓에 2시간 이상의 대기와 파리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대기하면서 아내와 컨셉 사진도 찍고 사람들을 구경하며 신행 첫날 첫 번째 이벤트(?)를 기꺼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대기선이 짧아지면서 박물관에 한 발 더 다가간다는 느낌도 좋았었다.


인고의 시간을 흐른 후 힘들게 들어선 루브르 박물관.
하지만 생각보다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지 못했다. 결혼 준비와 신혼여행 일정을 짜는 데 시간을 보낸 탓에 루브르 박물관에 관한 공부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건 작품은 고작 <모나리자>, <니케>, <비너스> 등으로 누구나 할법한 것들 뿐이라 그 빈약한 지식으로 엄청난 작품을 깊이 감상하기엔 벅찼던 것이다.

결국 2시간 이상을 기다려서야 들어온 박물관에서 고작 2시간도 버티지 못한 채 루브르 견학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의 이태리 여행에서는 바티칸 투어를 신청하여 관람했었는데, 그제야 미술 작품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 만큼 신행 때는 무지했었다.

니케상의 모습

한편, 박물관 관람 도중 너무 힘들어서 2층 라운지에 나와서 쉬고 싶었지만 우리에게 휴식조차 사치였는지 쉴 공간과 벤치가 없었다.

다행히 우리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앉아 있는 모습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박물관 관람을 황급히 마치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유리 피라미드 배경으로 이상한 자세로 컨셉 사진을 찍고 있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왜 다들 유리 피라미드 쪽으로 손을 올려놓고 찍는지 몰랐지만 검색한 후에야 그 자세가 루브르 박물관의 인증샷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쩜 우리는 여행 정보가 그토록 없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신행을 유럽으로 오게 됐는지.

그렇게 우리는 무모했었다.

하지만 그 무모함의 크기만큼 아직도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건지도.

2층 라운지 구석에 앉아 있어도 즐거웠다.
여행 정보의 부족함 덕분에 여행 추억의 풍성함을 얻게 되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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