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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Feb 27. 2024

어느 날 장이 내게 말했다. '너 내 생각은 안하니?'

feat. 커피

책 <주말모녀>



우리집(정확히는 엄빠의) 자식들은 중독되었다. 아들은 에너지 부스트 음료에, 딸은 편의점 커피에. 그래서 냉장고와 딤채에서 커피와 에너지 부스트 음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엄마는 '중독'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며 자식들을 자극하지만 자식들은 늘 그렇듯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길을 간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차서 그런지 그런 건 참 독립?적으로 잘 자란 듯 하다. 부모님 말씀이 옳은 것도 있지만 때로는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는 '어머니는 떡을 써십시오, 저는 햄버거를 먹겠습니다.'하는 무대뽀 정신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몸을 생각해야 하는 40대이니, 전에는 오전오후 다 편의점 커피로 때려넣었다면 이제는 한 번은 봉지 커피로 타협을 봤다. 



봉지 커피 외길인생. 모카골드 마일드의 맛을 직장에서 알았다면 화이트 골드의 맛은 미용실에서 알았다. 요즘에는 미용실에 커피머신 기계가 다 있어서 아메리카노나 라떼를 만들어주는데 라떼가 없을 경우 믹스 커피를 요청하기도 한다. 최근 가게 된 미용실에서 믹스 커피를 마셨는데 달달한 게 너무 맛있어서(하지만 모카골드 같이 익숙한 맛은 아니었기에) 무슨 브랜드인지 물어봤더니 맥심 화이트 골드였다. 이렇게 단맛이 뿜뿜인데 왜 '화이트'인 거지? 라는 궁금증은 뒤로하고 140T를 주문했다. 마음 먹고 무언가를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커피가 있으면 그렇게 든든하다. 그래서 예전에 고정 연재할 때는 시간에 상관없이 편의점 커피(대의?는 비싼 커피와 함께)를 옆에 두고 작업했다. 커피의 힘(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으로 마감 한 번 어기지 않고 12달을 연재했으니 커피값은 뽑은 셈이다. 



화이트 골드를 먹기 전에 나는 심플 라떼 애호가였다. 밍밍하다는 의견들이 많지만 그 밍밍함이 심플라떼의 매력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당류가 모카골드는 6g, 화이트골드는 5.7g, 심플라떼는 2.5g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정말 오랜만에 장염에 걸려 고생을 심하게 했다. 짬짜면에 탕수육까지 배터지게 먹고 번지점프를 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 고통이었다. 심플라떼 위주로 마시다가 화이트 골드로 바꾼 후 달달한 아이스에 빠져 두 봉지씩 마셨던 것이 내 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 수도 있다. 안 그래도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앓?고 있는 예민한 장기인데 주인이란 작자가 갑자기 과섭취를 즐겨 파업한 것! 장 왈 '너 내 생각은 안 하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염과 함께 화이트 골드가 동이 났다. 집에 봉지 커피가 없는 건 말이 안되니 또 쇼핑몰을 뒤졌다. 다시 심플라떼로 돌아가야지 마음먹었다가 엄마 드시라고 사놓은 헤이즐넛 가루커피가 생각났다. 아직 4병이나 남았는데 엄마는 맥심 오리지널 병커피가 더 맛있다고 노선을 변경했다. 장염도 걸렸겠다. 나도 아메리카노로 마셔볼까. 그런데 그냥 아메리카노는 맛이 없어서 못 먹겠는데 예전에 알아봤던 시럽을 사서 타먹을까? 여러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쳤다. 그래 결심했어! 여러 봉지 커피는 마셔봤으니 이제 시럽을 타서 아메리카노를 마셔보자! 물론 시럽이 당류가 더 많을 수도 있지만 믹스를 마시나 시럽이 든 아메리카노를 마시나 아예 안 마실 거 아니면 도긴개긴(이라 우겨보자)일 것이다. 스타벅스 헤이즐넛 시럽 2병 23,700원 결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노트북 옆에는 로슈거 에스프레소 라떼가 있다. 장염 걸리기 전에 참 즐겨마셨는데 10일 안 마셨다고 이게 쓰네. 먹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입맛은 몸이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무엇을 먹고 싶다라는 식욕이 아닌, 진짜 내 몸이 원하는 음식에 대한 갈구.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인데도 쓴 맛이 느껴지는 건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확실한 건 장염때문에 몸에 안 좋은 건 죄다 안 먹고 있는데 확실히 장 건강이 좋아지는 느낌이다.(사실 쾌변이야말로 장 건강의 청신호) 왜 사람은 아프고 나야 정신을 차리는 건지.(나만 그래?) 늘 내꺼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라지고나서야 소중함을 느낀다. 오늘 스타벅스 시럽이 도착한다. 20대 때는 모카파였고, 30대 때는 라떼파였으니 이제 40대에는 아메파(시럽파 아냐?)가 되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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