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살던 동네로 유추해보건대 초등학생 때였을 거다.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비둘기 한 마리가 우리 앞으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곱게 접혀있어야 하는 날개를 힘없이 바닥에 질질 끌면서.
그때만 해도 비둘기는 지금처럼 더럽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냥 좀 흔하게 볼 수 있는 평화의 상징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모르면 용감하다고 어린아이들이 뭐가 무서웠으랴.
우리는 그 비둘기를 너무도 당연하게 병원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그리고 넣어갈 박스가 없었으므로 또 너무도 당연하게 두 손으로 안아 들었다. 비둘기는 우리가 헤치려는 의도가 없다는 걸 알기라도 했는지 단 한 번도 퍼득거리지 않고 얌전히 안겨있었다. 몸부림칠 힘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다. 비둘기 깃털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그리고 그 작은 몸통이 얼마나 따뜻한 지도. 물론 지금은 손 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지금은 조류를 무서워한다)
가까운 동물병원에 가서 비둘기를 보여주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능숙하게 엑스레이를 찍더니 부러진 다리와 날개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리고 치료비 3천 원을 내라고 하셨는데 그 말에 우리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우린 이 새의 주인이 아닌뿐더러 길거리의 비둘기를 순수하고 상냥한 마음으로 치료하기 위해 데려왔는데 돈을 요구하는 선생님이 너무 야속했다. 아마 처음으로 '냉정한 현실의 대가'라는 걸 인지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정당하게 치료비를 요구한 선생님은 또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대뜸 비둘기를 데려와놓고서는 '하지만 돈은 없어요'라니.
사실 그 후 치료비의 행방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우린 100원도 없었기 때문에 아마 무료로 보내주지 않으셨을까 싶다. 혹은, 그때는 외상이라는 개념이 있었으므로 후에 부모님이 내주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얼마나 속상했는지 죄송하게도 현재는 치료비에 상처 받았던 마음만 남아있다. (혹시 무료로 치료해주셨다면 감사하다. 따뜻한 보람이라도 가지셨기를)
그리고 후처리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병원에서는 맡아줄 수 없으니 옆 경찰서에 가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또 비둘기를 안고 차박차박 걸어가 경찰서 문을 열었다. 경찰관 아저씨들은 또 얼마나 당황했을까. 되찾아갈 것도 아니면서 살아있는 비둘기를 맡아달라고 온 꼬마 두 명이라니. 그리고 멀뚱멀뚱 구구구 쳐다보는 비둘기 한 마리.
그렇게 우리는 순수함이라는 용기로 무장한 채 또다시 대가 없는 친절을 바랐다. 결국 팔을 멀찌감치 벌려 비둘기를 받아 들어주었던 그분들이 생각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나였으면 기겁했을지도) 모든 것이 순수했던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