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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May 09. 2020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며 열이 펄펄

역시 건강이 최고

같이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선천적으로 체력이 약한 엄마의 최대 바람은 오로지 하나다. "아, 아플 거면 제발 여행 끝나고 아팠 좋겠다."



난 식물이 참 좋다. 싱그러우면 싱그러운 대로 저물어가면 저물어가는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사랑스럽다. 이건 부모님의 취향물려받은 거라 야경으로 유명한 고급 호텔과 휴양림 중 선택하라면 단연코 휴양림이다.


혼자 남해에 처음 내려갔을 때 건조한 숙소 탓인지 목이 칼칼했다. 이윽고 저녁엔 따끔따끔거렸다. 절기면 으레 붓는 목이었지만 지금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급하게 젖은 수건을 여기저기 널어놓고 목에 옷을 둘둘 감고 잤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다음 날 아침엔 켁켁거리는 소리만 겨우 나올 뿐이어서 체크아웃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서 주사를 맞고 하고 확실하다는 약을 처방받았다. 오늘은 그렇게 좋아하는 휴양림을 예약했으니 그냥 푹 쉬면 되겠다 싶었다. 병원부터 휴양림까지는 차를 타고 약 40분 거리.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을 운전하는 동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해 장을 본다는 명목 하에 두 번이나 마트에 차를 세우고 쉬어야 했다.


질 좋은 고기를 나게 구워 먹고 싶었는데 입과 속이 썼다. 마트 안을 빙글빙글 돌아도 사고 싶은 게 없었다. 결국 따뜻한 국물을 위한 인스턴트 쌀국수와 즉석밥, 통조림 한 두 개를 사고 그대로 숙소로 들어갔다.


약을 먹기 위해 비상용으로 차에 실어놨던 과일을 몇 개 주워 먹고 대낮부터 드러누웠다. 술도 안 마셨는데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 한숨 자야 할 것 같았다. 기어가 대충 침구를 주르륵 끌어낸 뒤 그 위로 쓰러졌다. 비수기라 사람이 없는 휴양림은 새소리, 물소리, 시원한 나뭇잎 소리로 가득했고 난 그 안에서 혼자 펄펄 끓었다. 렇게 죽은 듯이 잠에 들었다.


야생 동물들이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어렴풋이 들리며 잠이 깼다. 이미 밖은 깜깜해져 있었고 양 옆 숙소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아직온몸이 뜨끈뜨끈했지만 잠시 문을 열고 적막한 밤을 느끼러 밖으로 나갔다. 통나무 집 데크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골 산속 별이 쏟아지는 밤을 기대하고 예약한 건데 눈치 없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몇 시간 만에 살아서 눈을 뜬 거에 만족하기로 했다.


면을 삼키기 힘들 것 같아 국물만 끓여 호로록 들이키고 또 약을 먹었다. 제발 내일은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그렇게 또다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짙게 푸른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같이 잠에서 깬 새의 지저귐이 반가웠다. 손 발이 가벼워서 절로 웃음이 났다. 이마도 따끈한 정도였다. 둥둥 날아갈 것 같은 발걸음으로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왔다. 꽤나 고도가 높은 전망대도 다녀왔다. 간단한 말이 무겁다고 했던가. 역시 건강이 최고다.


통조림 하나에 즉석밥만 차린 단출한 아침밥이 맛있었다.


룰루랄라 새벽 산책길
전망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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