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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May 10. 2020

손안에 가득 찬 계란이 따뜻했다.

난 여행을 좋아하는 만큼 겁도 많다. 국내, 해외를 불문하고 여행지에서 해가 지고 나서는 절대 혼자서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하고 게스트 하우스에 대한 로망이 있는 반면 실제로 타인과 함께하는 숙소는 무섭다. 숙소랑 붙어있는 펍이 아닌 이상(그것도 해가 지기 전에) 알코올웬만하면 에 들어와서 마신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정작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경계하기 바쁘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긴장의 연속이다. 무사히 집에 돌아오고 나서는 이번에도 무사고로 여행을 끝 마친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다. (혼자든 동행이 있든, 항상)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해의 시골 마을은 숙박 업소 예약 어플이 무용지물이었다. 커다란 리조트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미리 예약할 호텔이 없다면 인심 좋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집이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지쳐 들어간 카페의 사장님 왈, "이쪽으로 계속 가봤자 아무것도 없어요. 요즘은 민박집도 다 문 닫아가지고.."


사장님이 알려주신 곳으로 방향을 틀어 또 한참을 달렸다. 당최 오늘 밤 머물 곳이 보이질 않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좀 걷다가 커피 한잔을 마셨을 뿐인데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반짝하고 켜지는, 그것도 띄엄띄엄 몇 개 없는 가로등을 보는 내 마음이 다급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바닷가 바로 옆의 무인 호텔.


일단 위치를 확인해 두고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곤 검은색에 집어삼켜지는 바다뿐이라 다시 차를 돌려 그 호텔로 향했다. 1 객실 1 차량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그 호텔은 비어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 자동으로 차고의 셔터가 내려갔다. 이제 어떻게 하는 거지 기웃기웃거리는데 갑자기 인터폰 벨 소리가 울려 화들짝 놀랐다. 벌렁벌렁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전화를 받았다. 상냥한 목소리가 쾌활했다. "제가 데리러 갈게요~"


중년의 여자 사장님이 짐을 들어주겠다며 마중을 나오셨다. 잔뜩 긴장한 젊은 아가씨가 혼자 들어오길래 먼저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무인이지만 cctv로 다 보고 계시나 보다) 그러면서 저녁은 먹었는지 어디서 왔는지 출장인지 여행인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제일 따뜻한 방으로 준거라며 귀여운 생색을 내시고는 잠깐만 기다려보라고 하셨다. 후다닥 사무실로 내려가시더니 구운 계란을 4개나 가지고 올라오셨다. "절대, 절대! 굶고 다니면 안 돼요!"


손안에 가득 찬 계란이 따뜻했다.     

깨소금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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