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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Mar 06. 2021

딱 '지리산 맛'이었던 둘레길 쑥개떡


오늘 아이와 놀이터에 나갔다. 미끄럼틀을 신나게 수십 번 타고 내려온 아이를 데리고 떡집으로 갔다. 놀이터 갔다가 떡집을 들르는 건 우리의 산책 코스다. 재미있게 놀고 나서 맛난 떡으로 출출한 속을 달래는 건 꽤 괜찮은 조합이다.



아이는 무조건 팥이 들어있는 떡, 나는 무조건 인절미를 집는다. 그래서 앙꼬 절편 하나, 인절미 하나, 이렇게 두 팩을 샀다. 5000원의 행복. 우리는 집에 와서 손을 깨끗이 씻고 각자 자기 취향에 맞는 떡을 집어들고 냠냠 맛있게 배를 채웠다.



아이 손에 들린 쑥 앙꼬 절편을 보자 문득 지리산에서 먹은 쑥개떡이 생각났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나는 남편과 단 둘이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왔다. 일상에서 아예 벗어나고자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에 여정은 정해놓지 않았다.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고 숙소도 그날그날 잡았다. 무릎이 말썽을 부려 결국 여행을 접기까지 총 열흘을 꼬박 걸어다녔다. 



지리산 둘레길은 경치도 좋지만 그에 못지 않게 먹거리가 일품이다. 산해진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슴슴하고 투박한, 서울에서는 도저히 만나기 힘든 산골 그대로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1코스 어디쯤에서 만났던 쑥개떡 역시 그런 음식이었다.



서울에서 교통수단만 타고 돌아다니던 내 다리는 눈 뜨면 잘 때까지 걸을 일 밖에 없는 지리산 둘레길에서 종종 고장을 일으켰다. 그래서 자주 쉬었는데, 그때도 쉬려고 나무 그늘을 찾고 있었다. 수령이 400년은 족히 됨직해 보이는 나무가 있어 그리로 가니 그 아래서 한 아주머니가 자그마한 책상을 놓고 쑥개떡과 매실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마침 출출했던 터라 우리는 쑥개떡 두 개, 매실 음료수 두 개를 사서 자리를 잡았다. 지리산 쑥개떡은 색깔부터 달랐다. 우리 동네 떡집에서 볼 수 있는 예쁜 초록색이 아니었다. 시커먼 쪽에 가까웠다. 지리산 산골에서 그대로 캐어내 아무 가미도 하지 않은 그대로의 쑥 색깔이었다. 맛도 투박했다. 조금이라도 맛있게 만들려고 떡 고유의 쌀맛을 잔뜩 감춘 도시의 떡과는 달랐다. 그냥, 떡맛이었다. 쌀을 쪄놓은 맛. 밥맛에 쑥맛이 더해진 딱 그 맛이었다.



쑥개떡 하나에 매실차를 마시고 기운을 차린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문득 나는 쑥개떡 얘기를 꺼냈다.




아까 그 쑥개떡 어땠어?

어, 괜찮더라.

맛있었어?

음...... 




적당한 단어를 찾는 듯한 남편의 얼굴을 보고 내가 대신 대답했다.




딱 지리산 맛이지?




그러자 남편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거였다면서.



지리산에는 그 쑥개떡처럼 딱 지리산스러운 음식이 즐비하다. 우리는 아이를 낳으면 꼭 셋이 같이 지리산에 다시 와서 우리 산과 들에서 나는 좋은 음식들을 실컷 맛보여 주자고 약속했었다. 그게 올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 그리운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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