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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Aug 04. 2021

러닝머신으로 서핑 해봤니?



소현은 운동을 좋아한다. 운동광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꽤 일찍부터 헬스장을 끊어서 다니곤 했다. 배를 타기로 지원한 데도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직접 몸을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취향이 십분 반영됐다. 대학 때 테니스 동아리 회장을 맡을 정도로 열심히 했고, 웨이트보다 어렵다는 크로스핏에도 발을 담가 봤다.     




배에선 갑판이 운동장이다. 이번 배 기관장님이 운동을 좋아해서 기관부는 주말마다 갑판 위를 달린다. 소현이 타는 배는 선수에서 선미까지 300미터 정도 된다. 왕복 10바퀴를 돌면 6킬로미터쯤 달리는 셈이다. 대부분 LNG 탱크는 네모난 멤브레인 타입인데 소현이 타는 배는 탱크가 동그란 지구 모양인 모스(moss) 타입이다. 그 탱크가 갑판 자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LNG선에선 LNG 탱크가 상전이기 때문에 이걸 가운데에 놓고 주변을 빙 둘러서 달리는 것이 코스다.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수많은 새들이 배를 따라오는데 새들과 같이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다.     




하지만 갑판은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서 평소엔 조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다행히 선내 헬스장이 따로 있다. 러닝머신, 자전거, 역기 등 헬스 기구 몇 가지만 있는 단출한 곳이지만 운동에 대한 갈증을 풀기엔 그럭저럭 괜찮다. 소현은 배에서도 매일 이곳에 들러 운동을 빼놓지 않는다. 사실 육지에 있을 때보다 배를 타는 동안 운동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이라서 자칫 체력 관리에 소홀히 했다가 일에 지장을 주거나 나아가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소현은 주로 러닝머신을 이용하는데 배의 헬스장에서 타는 이 러닝머신이 상당히 재미있다. 특별히 파도가 거세지 않아도 바다 위를 떠가다 보니 항상 흔들림이 있기 마련인데 바닥에 고정돼 있는 러닝머신도 배처럼 그 물결을 같이 타게 된다. 배가 앞으로 기울면 갑자기 내리막길이 되면서 빨리 뛰어야 한다. 반대로 배가 뒤로 기울 땐 순식간에 오르막길로 바뀌어서 헉헉대고 달린다. 같은 시간을 뛰어도 육지보다 운동량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지를 뛸 때보다 훨씬 재미있다!     




사실 소현은 물을 무서워해서 서핑은 꿈도 못 꿨었다. 해양대 동기들 중에는 해양 스포츠를 좋아해서 여름마다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서핑하는 기분은 어떨까 늘 궁금하고 부럽기만 했었는데 러닝머신을 타니까 그 기분이 어떤 건지 아주 조금은 짐작이 갔다. 파도가 조금 센 날엔 러닝머신 파도의 끄트머리에 올라앉았다 상상하고 일부러 눈을 감고 느껴본다.     




나는 지금 호주 골드코스트 해변에 서 있다. ‘서퍼스 파라다이스’라는 별명답게 전 세계 서퍼들이 서핑을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옆구리 서핑 보드 하나씩 끼고 적당한 파도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중이다. 나는 찰랑이는 바닷물 속에 발을 담근 채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간다. 차가운 바닷물의 감촉이 얼른 바다로 나아가라고 재촉한다. 서핑보드를 바다에 띄우고 파도를 향해 양팔을 힘차게 젓는다. 앞에서 커다란 파도가 밀려온다. 바로 지금이야! 보드 위에 얼른 올라타서 몸의 균형을 잡는다. 파도가 손에 닿을 듯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내 몸을 둘러싼다. 가만히 손을 뻗어 파도 속으로 쑥 집어넣......     




“너 뭐 하니?”     



갑자기 주변에서 파도가 사라졌다. 서핑보드도 사라졌다. 2초 간 발을 멈추고 있었는지 앞으로 기울어지는 러닝머신 때문에 계기판으로 떠밀려 가 부딪힐 뻔했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어느 틈엔가 기관장님이 들어와서 역기를 들고 있었다.     



“너 왜 눈을 감고 운동해?”

“아, 그게...... 어제 잠을 좀 못 자서요.”

“쉬엄쉬엄 해라.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지.”

“네에-”     



휴우, 하마터면 이불킥할 상황이 발생할 뻔했다. 소현은 자신의 기지에 스스로 감탄하며 얼른 운동을 마무리했다. 기관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헬스장을 나오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번엔 밤중에 아무도 없을 때 와서 좀 더 제대로 서핑을 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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