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학년에 광대가 있으면 생기는 일

by 삽질

2015년 늦은 나이에 경기도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한 학년에 3,4반 정도 되는 중소 규모의 학교였습니다. 학군이 좋지 않아 선생님들이 선호하지 않은 학교였죠. 그런 곳으로 군필자에 나이까지 많은 신규가 들어오니 굴려먹기 딱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학교에서 기피되는 반과 업무를 맡으며 시작부터 고문?을 당했습니다. 저는 학교생활 버티기에 돌입하게 됐죠.


동학년 선생님들은 제 부모님 뻘 되는 베타랑 선생님들이셨어요. 그만큼 어렵기도 했지만 저를 많이 도와주시려고 애쓰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불편한 관계가 쉽게 바뀌진 않더군요. 시도 때도 없는 티타임과 제가 전혀 관심이 없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하시던 시간이 무척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내성적인 저는 가슴 명치가 꽉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참으며 동학년 선생님들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배울 점도 많았고요. 다만 그냥 제가 불편했을 뿐이지요. 게다가 힘든 학교생활 속에서 동학년 선생님들의 따듯함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원래 한 번 심통이 나면 만사가 다 싫증 나는 법이잖아요. 심사가 제대로 꼬여있던 상태였죠.


3년 차가 됐을 때 저는 체육전담과 체육부장을 맡았습니다. 그리곤 6학년 소속으로 배정됐습니다. 6학년에는 젊은 여자 선생님 3분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들어온 젊은 스포츠강사 선생님 한 분이 계셨고요. 그렇게 남자 2, 여자 3은 젊은 동학년이 됐습니다. 교감은 자기 마음대로 학년배정과 업무분장을 끝내놓곤 뿌듯하다는 듯 저희를 어벤져스팀이라고 떠벌리고 다녔죠.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저희는 만족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새롭게 만난 동학년 선생님과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대화도 잘 통하고 유쾌했지요.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중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핵심적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P여자 선생님이셨죠. 어디 가서 선생님이라고 하면 믿지 못할 정도의 화끈함과 예상치 못한 언행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광대였습니다.(저도 한 광대하는데 발치도 못 따라갑니다.) P선생님 '덕'분에 우리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가면을 던져버리고 마치 중, 고등학교 친구들처럼 격의 없이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에게 거친 말과 행동은 예사고 끊임없이 헛소리를 쏟아냈었죠. 학생들에겐 모범이 되진 못했지만 학교 생활에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일이 지치고 힘들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회식 콜"을 외치곤 했습니다. 그렇게 동학년 막내 선생님의 자취방은 저희들을 난장 무대가 되곤 했습니다. 술에 진탕 취해 춤도 추고, 인생 이야기, 사랑 이야기하면서 눈물도 흘리곤 했었죠. 감성이 넘치는 시절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자의식이 강해지면 점점 자신의 진심을 숨기게 되잖아요. 그렇게 사람들과의 관계에 진심이 깃들기 어려워지고요. 다행히 제 마음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P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죠. 마법 같은 그 사람의 매력 덕분에 저희 동학년 선생님들은 모두 솔직한 자기 모습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그런 솔직한 감정들이 섞여가는 와중에 동학년 K선생님과 많은 생각들을 공유하고 공감했습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기 시작했죠. 짐작하시겠지만 그 K선생님은 지금 제 아이의 엄마, 제 아내입니다. P선생님이 없었다면 제 아내와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려웠을 거예요. 애초에 우리는 내면이 발가벗겨진 상태에서 만났기 때문에 진실된 모습으로 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죠. 가면을 잘 벗지 못하는 저로서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 고마운 마음 때문에 P선생님에게 저희 부부의 결혼식 사회를 부탁하기도 했고요. P선생님은 제 삶의 은인입니다. P선생님 덕분에 더 솔직하게 살 수 있게 됐고,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해서 아이까지 키우고 있으니까요. 정말 고맙고 감사한 사람입니다.


SE-b714f110-e522-47e0-b681-4ce941473852.jpg?type=w966


지금도 저희 5명은 주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첫 만남이 9년 전이니 함께 한 시간이 꽤 오래됐네요. 당시에 막내였던 선생님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막내 선생님의 신혼집에서 집들이를 했었죠. 그러면서 저희는 또 같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P선생님이 없었다면 우리의 만남은 과연 어땠을까 하고 말입니다. 정말 상상하기 싫을 만큼 끔찍한 동학년이 됐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P선생님의 친화력과 침투력이 없었다면 우린 말 그대로 단단한 가면 아래 속마음을 숨긴 채 명치가 꽉 막히는 동학년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다들 내성적이고 눈치 많이 보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렇게 그 자리에서 저희는 다시 한번 P선생님께 고마운 마음 표현했습니다. 술 한잔 걸치며 거칠고 걸쭉한 저희만의 방식으로요.


제가 첫 발령을 받아 의원면직을 했던 그 학교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만큼은 제게는 더없이 소중한 인연이었기 때문이죠. 밉기도 하지만 고마운 학교입니다. P선생님을 만난 건 제 아내를 만난 것만큼이나 행운이었고요. 살다 보니 세상 일이란 게 정말 나쁜 것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정말 나쁜 일일수록 결국엔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고 신기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P선생님에게도 앞으로 더 좋은 일들이 생겼으면 합니다. 진심으로요.

keyword
삽질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11
매거진의 이전글여행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