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들을 위한 진짜 조기교육

영어유치원 아닙니다.

by 삽질

‘4살에 한글을 떼야 5살 부터 수학을 달릴 수 있다. 영어를 미리 해놔야 나중에 수학에 올인 할 수 있다.‘ 아내 말로는 최근 조기교육 시장의 트렌드라고 합니다. 저는 영어 유치원 정도만 알았지 조기교육에 이런 심오한 철학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아마 이런 조기교육 엘리트 코스를 밟고 몇몇 아이들은 SKY대학교나 의대에 진학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갖고 기득권 사회에서 살아가겠죠. 하지만 대학 진학이나 좋은 직업만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기계처럼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인생은 매우 길고 복잡합니다.


복잡하고 긴 인생에서 아이들이 가장 먼저 습득해야 하는 능력은 무엇일까요. 영어, 수학, 논리력, 사고력은 입시 시장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을 순 있지만 삶이라는 무대 위에선 최우선 순위는 아닐 겁니다. 아이들은 먼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생존할 수 있다는 건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서 실패를 경험하고 극복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 가정이나 학교를 보면 위험 요소를 모조리 제거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은 온실 속 화초로 자라고 모든 위험은 부모, 교사가 막아주고 있죠. 부모는 아이를 사랑해서 그리고 교사는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적 책임을 위해 아이들을 과잉보호합니다. 그렇게 집과 학교에서 아이들의 손과 발이 묶여 버립니다. 안전이라는 명목 아래 아이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모두 차단해버리죠. 쉬는 시간에 운동장도 못갑니다. 아이들끼리 다툼이 생기고 문제가 생겨도 부모와 교사가 중재하고 해결해줍니다. 실패나 갈등을 경험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있더라도 스스로 극복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죠.


아이들이 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남들과 잘 어울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선 기본적인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아마 선생님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반에서 가장 예쁜 아이를 고르라고 하면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는 아이를 뽑지 않을 것입니다. 예쁘게 인사를 잘하고 사소한 것들에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말할 줄 알고, 잘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 잘못했습니다."라고 사과할 줄 아이를 먼저 떠올리실겁니다. 다툼이 생겼을 때 아이들 스스로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쉽게 끝날 일이 이젠 학교폭력이 됩니다. 사소한 예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윤활류 역할을 합니다. 아주 작은 말과 행동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선 안되는 소중한 가치이지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런 사소한 예절을 가르쳐 기본 인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교육은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먼저 이뤄져야 하고요.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서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치있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소하지만 우리 삶에 중요한 가치를 모국어를 습득하듯 자연스럽게 익혀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실패를 극복하는 경험을 하지 않고 인성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면 나중에 치뤄야할 개인적 사회적 비용이 훨씬 커집니다. 자신의 삶을 돌볼 줄 모르고 오로지 공부만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달린 아이들은 말그대로 똑똑한 바보가 되는 것이죠. 부모가 수강신청과 결근 통보를 대신 해주는 건 비정상입니다. 그리고 너무 늦게 실패를 경험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듭니다. 직업시장에서 필요한 능력은 천천히 준비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마 공부를 좀 해보셨던 분이라면 공감하겠지만 학습은 문해력만 갖추고 있다면 시기와 상관없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경험에 따르면 자신이 원한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거의 원어민에 가깝게 영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공부도 재능이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요.


교육은 가정에서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교육의 책임자는 부모입니다. 학교와 교사는 그걸 보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요즘은 모든 책임을 학교와 사회에 떠넘기고 있는 듯합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 돈으로 해결해서는 안됩니다. 돈으로 해결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겠지요. 하지만 쉬운 길은 함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선행학습, 4세 고시, 영어유치원 이런 것들로부터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생존에 필요한 가치와 행동들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시간과 노력을 들여 꾸준히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조기교육이지요.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요.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시다시피 AI의 등장으로 미래는 더 깊은 혼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고요. 그럼에도 많은 학부모들이 그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사교육에 돈과 시간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대와 세상에 살더라도 아이들이 갖춰야 할 꼭 필요한 소양과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선 물과 식량이 꼭 필요합니다. 그 외의 것은 삶을 더 다채롭게 해줄 수 있는 충분조건일 뿐이죠. 이런 자연의 순리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더 선명해집니다.




keyword
삽질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