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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by 삽질


요즘 아이에게 새 신발을 사줬더니 낮이고 밤이고 공원에 가서 달리자고 합니다. 이제는 좀 컸다고 손도 많이 안 가니 함께 공원 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이와 놀아준다기 보다 아이와 함께 논다는 표현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주로 호수 공원 다리 밑에 널찍하게 마련된 광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합니다.

얼마 전에도 저희는 햇볕을 피해 다리 밑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깡' 하는 소리와 함께 야구 공이 데구루루 제 발밑으로 굴러오더군요. 아빠와 아이가 야구를 하는 데 아이가 홈런을 친 모양입니다. 제게 날아온 공을 주워 돌려주니 아빠는 활짝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넵니다. 그리곤 아이에게 다시 공을 던져줍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공을 세게 쳐도 남들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공이 빠르게 날아가진 않았지만, 통행하는 사람들 사이로 끊임없이 공이 튀어 다녔습니다. 굳이 사람들이 많이 통행하는 곳에서 버젓이 야구를 하는 게 이해가 잘 안 가더군요. 반대편에 넓은 잔디 광장을 놔두고 말입니다. 너무 더워서 그런 걸까요.


곧이어 아이의 엄마와 누나가 내야수와 외야수의 역할까지 하며 온 가족이 야구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공을 잘 치는 모습이 예뻐 죽겠는지 칭찬을 쏟아내는 아빠와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반면에 주변 사람들은 공이 날라오지는 않을까 눈치를 보며 피해 가기 바쁩니다. 다른 곳에서 하시면 안 되냐고 공손히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괜히 오지랖 부렸다가 혼쭐날까 봐 참았습니다. 결국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는 게 싫어 자리를 피했습니다. 멀리서 계속 들려오는 야구 배트 소리에 자꾸 정신이 쏠립니다. 좋지 않은 생각과 감정이 자꾸만 올라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본인의 자녀만큼 사랑스러운 존재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저도 집에서는 애가 너무 예쁜 것 같다며 아내에게 자랑? 을 하곤 합니다. 아내도 제게 자기 아들을 자랑하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저희 부부는 적당히 하라고 핀잔을 주는 척하지만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반면에 밖에 나가서는 제 아이를 절대 자랑하거나 칭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식 자랑은 남들의 공감을 얻지도 못하고 오히려 꼴불견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남의 자식은 자기 자식만큼 예뻐 보이지도 않고 관심도 별로 안 가잖아요. 사실 총각 시절에는 아예 애들 자체에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성가시다는 감정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애들 뛰어다니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곤 했었으니까요.


그 부모도 자식을 자식이 공을 잘 치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예뻐 보였겠습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겠죠. 본인들의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남들에게는 불편한 시간인 줄 몰랐을 것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즐거운 놀이와 공공예절 사이에서 지켜야 선을 흐리게 만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냥 눈치 없는 부모들이었을 수도 있고요.


요즘 부모들은 남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봐 혹은 자신의 아이가 다칠까 봐 노심초사하며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으로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중재하기 위해 애씁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공공예절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을 타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암묵적인 부모의 참역할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암묵적 규칙이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선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은 항상 생깁니다. 누군가는 아주 조금만 피해를 받아도 불만을 표하고, 누군가는 자식이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고 친구들에게 주먹질을 하고 다녀도 그저 귀엽다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아이가 더 특별하고 더 예쁘고 더 사랑스럽다고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남들 눈에는 그렇지 않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아이들에게 관대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더 그렇겠지요. 남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라면 반드시 본인의 행동을 돌아보거나 아이를 훈육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가족과 아이를 향한 사랑은 무척 중요하지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진 않으니까요. 적당히 눈치 좀 보면서 행복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혹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고슴도치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경계해야겠습니다. 남들의 행동에 너무 예민하게 굴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하고요.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좋은 사람, 좋은 시민이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은 부모로서 아이를 잘 지도하고 남들과 화목하게 어울려 산다는 건 생각보다 꽤 많은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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