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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쌓는 시간

by 삽질


요즘 저는 즐거운 취미가 하나 생겼습니다. 아들놈과 산책하는 것입니다. 집에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날씨도 좋으니 시간만 나면 아들놈에게 산책이나 가자고 꼬십니다. 아이는 항상 '콜'을 외칩니다. 요즘 달리기에 푹 빠져서 밖에 나가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44개월이 된 아들놈은 이제 별로 손이 가질 않습니다. 덕분에 친구와 외출하듯 편하게 함께 산책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아내가 조금 쉬거나 집안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내에게 약간의 생색도 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좋고 아내도 좋고 아이도 좋으니 산책을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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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놈과 단둘이 산책하면서 딱히 특별한 걸 하진 않습니다. 그냥 동네 공원이나 가고 출출하면 간식이나 사 먹으며 한량 짓이나 하는 정도입니다. 산책이란 게 원래 그런 거잖아요. 정처 없이 걸으면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이죠. 그러면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로 아이가 계속 질문을 하고 저는 대답을 합니다. 아이는 "만약에"라는 말로 항상 질문을 시작합니다. "만약에 내가 저 아파트보다 크면?", "만약에 내가 치타보다 빠르면?"같은 허무맹랑한 질문들입니다. 저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 줍니다. "그럼 진짜 무섭겠지", "그럼 아빠가 못 따라가겠지."처럼요. 누가 엿듣는다면 번역이 잘못된 대화문이라고 착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어쨌든 저희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산책 덕분에 아이와 많이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아이의 마음속에 제 자리가 조금 더 넓어진 기분이랄까요. 여전히 엄마가 1등이지만 이젠 제가 1.5등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 아빠랑 자고 싶다는 말을 하거나, 아빠한테 책을 읽어달라고 하거나, 이건 힘센 아빠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거나,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할 때 아이의 달라진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뽀뽀해달라고 하면 맨날 도망가던 녀석이 요즘에는 곧잘 해줍니다. 확실히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갖고 나서 생긴 변화입니다. 아내도 조금 놀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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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년 한 해 동안 일을 쉬며 아이를 집에서 돌봤습니다. 1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생각보다 저를 더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습니다. 다만 거친 아빠 손에 자라다 보니 조금 더 씩씩해진 면은 있었지요. 생각만큼 아이가 저를 따르지 않는다고 서운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소중했고 즐거웠으니까요. 그리고 오랜 시간 아이를 보고 관찰하면서 아이를 이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관계로 무르익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결국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 아이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죠.


앞으로도 아이와 산책을 하든, 등산을 하든, 운동을 하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제게는 정말 즐겁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도 이 시간이 정말 행복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훗날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무의식 속에 아빠의 사랑, 따뜻함 같은 좋은 느낌이 소복이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많이 커도 친한 친구처럼 단둘이 배낭여행도 가고, 지리산 종주도 가고, 멋진 프로젝트도 하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저의 곁을 서서히 떠나겠지만 언제든지 돌아와도 항상 반갑게 맞아줄 수 있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유대감이 끊어지지만 않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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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될 때까지 고작 10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하면 저를 이렇게 잘 따를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남은 시간을 꾹꾹 눌러 담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보내야겠습니다. 벌써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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