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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덕'분에

by 삽질

지난주 울산 언양에 다녀왔습니다. 아이의 증조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에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죠.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밖에서 마땅히 할 게 없다 보니 답답하더군요. 마침 언양 체육관에서 추석 시름 대회가 열리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금강장사 씨름 결정전을 직관하러 갔습니다. 명절 때마다 TV에서 씨름 대회가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릴 만큼 씨름은 제게는 너무 지루하고 관심 없는 스포츠였습니다. 저런 걸 보러 가는 사람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씨름 경기를 가족과 함께 직관하러 간 것이지요.


IMG%EF%BC%BF3695.jpg?type=w966 힌트: 가랑이 사이


이번 대회는 금강장사(90kg급) 대회였습니다. 꽤 높은 몸무게에도 불구하고 군살은 별로 없고 커다란 근육들이 온몸 곳곳에 붙어있더군요. 제 몸에 근육만 20kg 갖다 붙이면 될 몸 들이었습니다. 씨름판 바로 옆에 마련된 좌석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2시간 동안 정신없이 대회를 관람했습니다. 힘을 쓸 때마다 터질 듯이 근육이 부푸는 모습과 순식간에 몇 가지 기술이 오고 가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에 홀딱 빠졌습니다. 아이돌 사생팬처럼 소리도 지르고 박수도 크게 쳐댔습니다. 아이도 덩달아 정신없이 박수를 치며 관람했습니다. 이번 추석 때 가장 즐거웠던 순간으로 남아있습니다. (TV에도 나왔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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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때문에 새롭게 해본 건 씨름대회 직관뿐만은 아닙니다. 지난해 영월에 놀러 갔을 땐 아이가 없다면 절대 안 할 뗏목체험을 했습니다. 예상외로 천천히 흐르는 뗏목 위에서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니 기분이 정말 좋더군요. 아이 때문에 갯벌 체험도 하고 매일 같이 모래놀이도 하고 산책도 하루에 3번씩 갑니다. 바다에 놀러 가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수영을 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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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은 꼭 풍물놀이 공연을 보러 갑니다. 저희 아이의 최애는 카봇도 아니고 뽀로로도 아니고 하츄핑도 아닙니다. 바로 둥둥 아찌 들이지요. 용인 민속촌에서 풍물놀이를 관람한 뒤 지금까지 풍물놀이 사생팬으로 살고 있습니다. 집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안성과 이천에선 퀄리티 좋은 풍물 공연이 자주 열려 종종 방문합니다. 풍물공연 찾다가 청주읍성도 가고 정선까지 간 적도 있네요.


아이가 아니었다면 평생 해 볼 생각이 없는 행위들을 강제로 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끔 제가 생각해도 황당한 장소에 우리 가족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저는 실소를 하곤 합니다. 아이가 없이 아내와 저만 지금까지 살았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돈도 더 많고 시간 여유도 더 많으니 남들 다 하는 호킹 스나 백화점 쇼핑하면서 편안하게 생활했겠죠. 그리고 앞서 말한 씨름이니 사물놀이 따위는 제 인생에서 감히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총각때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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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우리 가족의 삶을 전혀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주곤 합니다. 예상치 못한 무작위적 사건들은 우리 가족의 삶을 더 예측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래서 좋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흥미진진한 도전과 모험이 생각보다 즐겁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경험할지 기대가 됩니다. 제 아이 '덕'분에 더 즐거운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이 '덕'분에 새로 태어났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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