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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편안함

by 삽질


요즘 이른 새벽이 되면 할아버지처럼 눈이 번쩍 떠집니다. 누워서 잡생각을 있을 바에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명상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심란할 땐, 생각이 이리저리 날뛸 땐, 항상 명상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숨을 쉬는 것처럼 평상시에도 명상을 자연스럽게 하면 좋으련만 꼭 아쉬울 때만 명상을 찾다 보니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가끔 하는 명상이지만, 명상을 하면서 제 몸과 마음을 이리저리 떠도는 생각들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호흡에 집중하고 무의식적으로 떠도는 생각들을 지켜보면 희미한 형상을 만납니다. 불안하고 심란했던 마음의 형상은 내가 원하는 바람대로, 내가 생각한 대로 앞으로의 일이 됐으면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려고 애썼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욕심을 부렸습니다. 잡을 수 없는 연기처럼 애쓰면 애쓸수록 저는 더 괴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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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불확실함이 존재한다는 사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만 그 불확실성을 행운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출렁이는 파도와 어두운 터널 앞에서는 항상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한 생활과 편안한 마음에 얼마나 적응됐는지, 그리고 그게 저를 얼마나 나약하게 하는지도 깨닫습니다.


나심 탈레브의 칠면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주인의 친절한 보살핌 속에서 칠면조는 하루하루 행복한 생활을 해 나갑니다.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라고 말하고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갖습니다. 그런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은 추수감사절이 오기 전까지만 유효합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아주 희귀한 사건들에 의해 결정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칠면조의 세상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희귀한 사건이 수학적인 확률보다 훨씬 자주, 그리고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현실에서의 확률은 게임에서의 확률과 같은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칠면조가 되는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합리적인 생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를 평탄하게 만들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보단 불확실성을 길들이는 편이 훨씬 합리적일 것입니다.


안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과 읽은 내용은 현실에 적용하는 것도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결국엔 행동하고 부딪치고 깨지며 배우는 것만이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행동하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고, 경험으로 삶을 쌓아 올릴 수 있습니다. 삶을 망가뜨릴만한 위험이 아니라면 뭐든 도전해 볼 만합니다. 칠면조가 되지 않으려면 행동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시대의 칠면조는 생각보다 긴 수명을 누리곤 합니다. 그래서 칠면조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운명의 주사위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건 무척 꺼림칙한 일입니다.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편안한 칠면조보다는 산속의 짐승이 자기다운 '진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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