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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Apr 11. 2018

잠이 오지 않아 쓰는 이야기

한국에서 한국 여자로 살기 2

지난 번  https://brunch.co.kr/@antilogie1/18 포스트의 글을 써주었던 친구의 우먼 온 웹 이용기를 이어 싣는다.


얼마 전 우먼 온 웹으로부터 임신 중단 유도제를 받아 복용하고, 임신 중단을 마쳤다.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 적지 않으려고 했지만 약제를 받았더라도 불안감 때문에 고통스러울 이들을 위해 글을 쓰려고 한다.

이 글은 일지 형식으로, 정보의 제공을 우선 순위로 한다. 가능한 감정을 제외하고 겪은 사실만 기록하려 하니, 부디 당신이 읽고 불안감을 덜었으면 좋겠다.


0. 나는 임신 4주 5일차였다.

임신 주수는 마지막 월경의 첫날을 기준으로 계산하며 테스트기에 잡히는 시기는 의심가는 관계의 2주 이후이므로 주의해서 시행해야한다.

만약 당신의 월경 주기가 대체로 일정하고, 임신 의심이 되는데, 월경 주기가 며칠 이상 미뤄졌다면 2주가 지났건 지나지 않았건 임신확인을 권장한다.

* 임신 테스트기의 정확성은 약 95%로, 시약지에 소변을 묻힌 후 5~10분 이내의 결과로 임신을 확인한다.

* 임신테스트기는 약국에서 4천원 선.

* 주수가 얼마 지나지 않았을 경우, 저것보다 시간이 지나서 테스트기에 반응이 올 수도 있다. 이 경우 재검, 또는 내원을 권한다.

* 가장 정확한 방법은 산부인과의 혈액 검사이며 비용은 1~2만원 선이다.

* 초기 임신은 어지간해선 초음파로는 잡히지 않는다.

* 단, 자궁 외 임신일 경우 약물 임신 중단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


1. 시작. 미페프리스톤 복용.

물과 함께 미페프리스톤을 복용했다. 미페프리스톤의 정식 용량은 200mg로, 대개 이 단계에서는 임신 중단이 진행되지 않으나 드물게 이 약을 복용하고 임신 중단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 나는 약간의 노란 분비물이 속옷에 묻어나왔고, 간헐적인 외음부 통증, 미약한 생리통과 같은 복통을 느꼈다.


2. 1일 1시간 후, 미소프로스톨 복용 (4정)

우먼 온 웹에서 권장하는 미소프로스톨 복용법은 미소프로스톨 4정을 혀 아래에 놓고 천천히 녹여 복용하는 것인데, 이 약제는 생각보다 잘 녹지 않는다. (한번씩 약물을 침으로 적셔주면서 혀를 굴려주어야 한다.)

오래된 밀가루를 얼기설기 뭉쳐놓은 것 같은 식감에, 혀를 찌르는 듯한 맛과 탁한 냄새가 난다. (맛은 없지만 그래도 일반 약제처럼 혀를 벨 것 같이 쓴 맛은 아니다)

* 네 알을 다 녹여 삼킨 뒤, 약 1시간 뒤부터 복통이 시작되었다.

* 미소프로스톨 복용 과정에서 혀가 뻐근해지고 목구멍을 비롯한 인후가 저린 듯한 통증이 일었다. 이 통증은 한잠 자고 난 이후부터 가라앉았다.


3. 1일 5시간 후, 미소프로스톨 추가 복용 (2정)

하혈이 느리게 시작되었고 중형 패드 하나를 반 이상 적실 정도가 되자 나는 격렬한 복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출혈 양이 적음에 불안을 느껴 누운 자세를 고쳐 앉고, 앉은 상태에서 반쯤 잠에 들었다 깨고를 반복했다.

* 자세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정자세로 누운 것보단 앉거나 무릎 꿇은 채로 누운 자세에서 가장 출혈이 많았다.

* 함께 있던 이의 말로는 내 몸에서 꽤 많은 열이 났다고 했다. 이 열감은 배설 이후 천천히 사라졌다.


4. 1일 7시간 후.

심한 복통에 잠에서 깨니 침대 시트가 피로 흥건했고 격렬한 배설감이 치밀었다. 곧바로 화장실로 이동해 변기에 앉자마자 나는 5~6개의 거대한 살점(흔히들 굴이라 부르는 것보다 훨씬 더 두껍고 큰, 손바닥의 1/3정도 크기의 덩어리였다.)을 배설했다. 거짓말처럼 복통이 가시고 피에 절어있다고밖에 표현이 안 되는 하체를 샤워했다.


5. 1일 8시간 후.

가신 줄 알았던 복통이 다시 유발되고 깔아놓은 패드 위로 4에서 언급된 살점이 두 덩어리 정도 떨어졌다. 크기는 조금 작았고, 이 이후 복통이 가셨으나 지속되는 출혈에 1시간 당 대형 패드를 한 장씩 갈아주어야 했다.


6. 1일 10시간 후.

패드를 적시는 출혈이 점점 줄어들고 미미한 복통이 남아 나프록센을 복용하고 전기장판을 튼 채로 엎드려 잠에 들었다.

* 우먼 온 웹 측에서는 약물 중절 진행 시 이부프로펜/나프록센 계열의 진통제 투약을 권장한다.


7. 1일 14시간 후.

중간중간 잠에서 깨어 패드를 갈아주고 다시 옅은 잠에 빠지고를 반복했다. 복통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고 식욕이 돌았다.

* 나는 당일부터 외부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출혈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피곤한 감이 있지만 임신 상태보다는 훨씬 가뿐했다.

* 이는 운동이 아닌 약 6~7시간 가량의 '외출'이었다. 활동이 많지 않고 식사를 하거나 카페에 앉아있거나 하는 종류의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8. 2일 1시간 후.

검붉은 살점들이 조금씩 배어 나오는 것을 보고 불안한 마음에 남은 미소프로스톨 2정을 추가 복용했다. 혀 아래에 놓고 녹이는데 맨정신에 먹으니 정말 끔찍한 맛이었다.


9. 2일 1시간~3일 후.

추가적인 검붉은 살점이 조금씩 떨어진다. 48시간 이후부터 패드를 중형으로 교체하였다.


10. 4일 후.

복통, 가슴통증, 졸림 등의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


11. 5일 후.

아주 미미한 출혈만이 있다. 손을 세척하고 질 내부에 손가락을 넣어보니 조금 탁한 피가 묻어나왔다.


12. 5일 3시간 후.

쎄페(질에 삽입한 후 정제수를 짜내어 청소하는 제품.)를 사용하였다.

* 약국에서 판매한다. 사용법은 매우 직관적으로 가격대는 3천원 선.


13. 6일 후.

패드에 연한 갈색의 냉 외에는 묻어나지 않는다.


14. 7일 후.

패드가 말끔하다.

증상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임신 중단이 이루어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나처럼 미소프로스톨 2정을 추가 투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만약 본인의 몸 상태에 대해 알고싶은데 이 글에서는 정보를 명확히 알 수 없고, 어떤 이유로든 내원이 두렵다면 우먼 온 웹 상담 메일 (info@womenonweb.org)에 한국어로 문의하라. 당신의 질문을 이해한 한국어 답변이 도착하니 언어의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이런 정보가 필요한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글을 썼다. 부디 이 글이 당신의 두려움을 해소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우먼 온 웹(women on web) 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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