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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5), 레오나르도는 뭐다?

차르토리스키박물관, 디카프리오보다 다빈치 13 

차르토리스키 박물관 가기 전 일부러 '수키엔니체'를 지나쳐 갔다. 이걸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서.  


"여기 동그란 홈 보여요? 용도가 무엇이었을 것 같아요?"  

" . . . . . ?? " 

"횃불 비벼 끄는 홈이예요." 


워킹 투어 가이드 오빠 말에 따르면, 수키엔니체 기둥에 난 이 홈은 횃불 끄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어두운 홀이나 건물 통과할 때, 우리식으로 하면 등불 용도로 횃불을 들고 들어갔다가 나오고 난 뒤 이 홈에 횃불을 비벼 껐다고 했다. '수키엔니체'는 직물회관이라 유럽의 온갖 상인들이 다 모이는 곳이어서 중세의 크라쿠프는 상당히 힙한 도시였다고. 나는 '수키엔니체' 가 직물회관이라서 온갖 직물들을 다 보고 만질 수 있는 박물관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애써도 찾을 수가 없어서 INFO 에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언니가 매우 당황하며 네가 보고 있는 건물 전체가 '수키엔니체' 라고. 국립박물관, 미술관, 기념품 점 등 모든 곳이 다 들어서 있는 이 건물 전체를 이제는 '수키엔니체' 라고 부른다고. 조각보만들기나 손뜨개, 자수놓기가 취미인 연짱이가 매우 황당해하고 허탈해하였던 수키엔니체의 기억. 


차르토리스키 박물관(CZARTORYSKI MUSEUM)으로 향하였다. 염개미는 폴란드 여행을 결심하면서 크라쿠프에 있는 차르토리스키 박물관에 관심을 가졌었다. 이곳 소장미술품을 연짱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서. 다빈치나 렘브란트 작품 외에도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의 작품들 역시 보고 싶었지만, 그의 작품은 차르토리스키 박물관 아닌 크라쿠프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결국 관람하지 못하였던 것이 두고 두고 미련으로 남는다. 나는 피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을 좋아한다. 브뤼겔의 이 작품은 현재 벨기에 브뤼셀 왕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크라쿠프 국립박물관에 소장 중인 

브뤼겔의 작품은 다른 작품인데, 브뤼겔이 표현한 색감이나 메시지가 좋아서. 


크라쿠프 국립박물관의 분관인 차르토리스키(CZARTORYSKI) 박물관은 가장 유서깊은 폴란드 귀족 가문 중하나인 리투아니아 포곤(POGON)의 차르토리스키 가문이 여러 세대에 걸쳐 수집한 컬렉션이다. 1876년 이래로 크라쿠프에서 운영 중인 이 박물관의 역사는 프와비(Puławy)에서 시작되었다. 1801년 이자벨라 차르토리스키(Izabela Czartoryska, née Flemming) 공주님의 유언에 따라 프와비에 폴란드 최초의 박물관이 세워졌고, 박물관 컬렉션의 가장 귀중한 소장품들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와 램브란트(REMBRANDT VAN RIJN) 그리고 라파엘(RAPHAEL SANTI)의 작품들 뿐 아니라, 폴란드와 유럽 역사 속 저명한 인물들과 관련된 수집품들을 일반대중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소장품들 중 라파엘의 작품 '젊은이의 초상(PORTRAIT OF A YOUTH)' 는 2차대전 중 분실되었다. 


1796 년 이자벨라 공주는 폴란드 분할 통치 기간 동안 폴란드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다양한 기념품과 예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폴란드는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 후 브와디스와프 차리토리스키(Wladyslaw Czartoryski) 왕자는 몇몇 이유로 이자벨라 공주 컬렉션의 새로운 집으로 크라쿠프를 선택하였다. 차리토리스키 가문은 이미 크라쿠프에 재산과 명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치적 상황 속에서 귀중한 컬렉션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브와디스와프 왕자는 힘든 격변기에도 컬렉션의 양을 크게 늘려 이자벨라 공주의 컬렉션을 독특한 세계적 수준의 예술품으로 풍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제 2 차 세계 대전 중 박물관은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라파엘의 작품은 나치가 훔친 가장 귀중한 작품 중 하나였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은 독일의 폴란드 침공 직후 독일로 이송되었지만, 다행히 전쟁이 끝날 무렵 크라쿠프로 돌아왔다. 공산정권 하에서 차르토리스키 박물관은 국유화되어 국립박물관 분관 중 하나로 변모하였으며, 2016년 12월 29일 폴란드 정부의 구매 덕분에 크라쿠프 국립 박물관의 필수 분관이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담비를 안은 여인(THE LADY WITH AN ERMINE),' 렘브란트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LANDSCAPE WITH A GOOD SAMARITAN)' 등의 회화와 조각, 공예, 군사, 응용 예술 등 많은 걸작을 26개의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차르토리스키 박물관 출입문. 

요즘 아이들 말로 '부심 쩌는' 간단명료한 박물관 입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박물관의 유일한 광고인 이유는 이 작품을 관람하고 나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차르토리스키박물관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담비를 안은 여인' 과 함께 램브란트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 으로 유명하지만, 그 외 소장품들 역시 수준이 엄청나서 폴란드 내 1, 2위 순위를 다투는 질 높은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나는 이 박물관과 크라쿠프 국립박물관이 헷갈렸는데, 차르토리스키박물관은 국립박물관 분점이었다. 나와 연짱이는 이 박물관에 매우 만족하기도 하였고, 더 이상의 박물관 투어 노동이 너무 힘이 들어 국립박물관은 가지 않았다. 박물관 소장 회화들은 매우 훌륭하였고 차르토리스키 가문의상이나 예복, 문장, 마구, 갑옷 전시물들도 기대 이상으로 멋있었다. 가문의 공주나 왕자 초상은 처음에는 좀 들여다 보았으나,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어서 풍경화 위주로 보았지만, 우리 말고 폴란드 사람들은 경외심을 갖고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문 공주님이 박물관을 만든 이유가 일반 대중들도 수준 높은 미술품들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국가가 외세에 의해 분할 통치를 받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소장 예술품들을 지키려고 애썼던 가문이 차르토리스키 가문이다. 힘든 폴란드 격변기 중에도 특권을 누리는 만큼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 진정한 '귀족'임을 보여주었던 차르토리스키 가문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다. 권력이든 물질이든 지위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그 움켜쥔 것 때문에 쉽게 타협하고 비겁해지던데. 이 박물관의 수준 높은 미술품을 보면서 우리나라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생각나서 잠깐 울컥, 하였다. 일제강점기와 격동기도 타넘었던 간송 선생님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오롯이 지켜지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바랐다. 


차르토리스키박물관은 워낙 어마어마한 박물관이어서 관람료도 비싸지만, 관람객 들어가는 시스템도 완전 

첨단이었다. 관람 전 락커룸의 사물함에 겉옷을 넣은 뒤,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티켓을 스캔해야 전시물들이 있는 내부로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고, 겉옷을 넣을 사물함 바코드가 찍힌 종이를 티켓과 함께 준다. 락커룸 입구에 있는 기계에 바코드를 읽히면 내 번호에 해당되는 사물함이 휘릭, 열리는데, 연짱이는 아마도 워낙 유명한 전시품들이 있는 박물관이어선지 관람 전부터 나름 긴장을 하였던가 보다. 


"엄마, 나 좀 도와줘. 나 아무래도 외투 벗으면서 외투와 함께 티켓이랑 사물함 바코드 종이도 같이 사물함에 넣고 잠궜나 봐."  

"뭐?"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제 옷하고 관람 티켓을 함께 넣고 락커를 잠근 것 같아요."

 (COULD YOU HELP ME, PLEASE? I THINK I'VE LOCKED THE LOCKER LEAVING MY CLOTH AND THE TICKET TOGETHER IN IT.) 


나는 연짱이가 말을 그렇게 잘 하는 줄 몰랐다. 급하니까 평소에는 말 한 마디 안 하던 아이가 영어를 막. 


직원 언니가 와서 아마도 마스터 키 같은 코드로 연짱이 사물함을 열어주려고 하는데, 그게 또 잘 안 되고 아이는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결국 열렸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연짱이 외투 뿐 티켓과 사물함 바코드 종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연짱이는 완전 멘붕이고 염개미는 염개미대로 어쩔 줄 모르겠고. 가만히 지켜보던 직원 언니는 사물함 맨 위를 슬쩍 보더니 저거 네 것 아니니, 그런다. 아이는 외투를 벗던 중 걸리적거리던 티켓과 종이를 사물함 위에 쓱, 올려두고 외투를 벗어 사물함에 넣은 다음 사물함을 잠궜던 거다. 그리고 나서 티켓과 사물함 바코드 종이가 손에 들려있지 않으니 당연히 사물함에 같이 투척한 줄 알았던 것이고. 연짱이는 평소 당황하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여서, 당황하는 아이를 보며 내가 더 당황하였다. 직원 언니를 보니 아마도 연짱이 같은 사람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었다. 좀 황망하고 정신없는 박물관 관람 시작이었다. 


그 유명한 램브란트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 

사진은 진품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박물관 내 기념품점에서 엽서를 구입하였다. 램브란트를 두고 '빛과 어둠의 예술가' 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불렸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그림이었다. 음 . . . 작품의 색감이나 분위기가 내 예상과 좀 다르고 내가 선호하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한데다 나는 예술 문외한인지라, 조금이라도 이 작품을 더 이해하고 싶어서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좀 의외였던 점은 생각보다 작품 크기가 작았다는 것과, 미술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될 정도로 가치가 큰 작품임에도 다른 화가들의 풍경화들과 섞여 전시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많이 당황하였던 기억이 난다. 


영어 설명이 잘 안 되어 있어서 당시에는 그저 가구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지금 보니 엄청 화려한데다 귀중품 넣으면 딱 좋을 만큼 이중 보안 되도록 만든 가구였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 유명한 '담비를 안은 여인(THE LADY WITH AN ERMINE).' 

담비를 안은 언니 이름은 세실리아 갈레라니(CECILIA GALERANI). 다 빈치가 밀라노의 로도비코 일 모로 대공(DUKE LODOVICO IL MORO IN MILAN) 집에 머물 때 그렸던 작품으로 담비 언니는 그 대공님의 정부였다. 교육 잘 받았고 문학적 재능도 있었던 언니라고. 얼굴 선이 가는 백옥 미인인데 똑똑하기까지 했다니 대공님이 좋아했을 만도 하구나, 싶었다. 이 그림에서 사람들이 담비에 주목하는 이유는 '담비'가 언니이자 대공님을 암시하는 것이어서. '담비'와 언니의 성(GALE-ERMINE), 그리고 대공님 관명(ERMELLINO BIANCO)이 같아서, 라는데, 담비는 중세 유명 화가들의 단골 소재이고 순백과 순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그림을 차르토리스키 가문 왕자님이 1800년 경에 구입하였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원래 이 그림 배경색은 회색이었는데, 몇 번 조금 조금 리터치를 거쳐 지금 같은 까만색으로 다시 그려졌다고. 담비 언니 생몰연대가 1473년에서 1536년이고, 언니 20대에 그려졌다 생각하면 15세기 그림이라는 건데, 정말 보존상태가 최상이구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관람하는데 평소 어디든 줄 서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염개미지만, 이 작품은 정말이지 그럴 만 하였다. 워킹 투어 가이드가 이 박물관을 강추하면서 '레오나르도' 하길래 내가 장난으로 레오나르도는 디카프리오지, 그래서 모두 웃었었는데. 다 빈치 오빠, 내가 잘 못 했어요.  


'담비를 안은 여인'은 미술 문외한인 내게 경외감을 일으킬 만큼 압도적이었다. 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인지를 구구한 설명 없이 한 방에 이해시키는 그림이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모작가라고 할지라도 결코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은 미묘한 표정의 표현과 손의 터치의 유려함이라니. 연짱이는 특히 담비에 완전 경도되어 담비만 확대하여 사진을 찍을 정도였다. 그 앞에서 아주 한참을 서성이다 겨우 나왔다. 


다시 눈보라 몰아치는 크라쿠프 구시가 중심광장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마리아 바실리카 대성당 한 번 더 보고. 


더 이상의 박물관 노동은 할 수 없을 만큼 나도 연짱이도 지쳐서, 구시가를 조금 벗어난 조용한 골목 안 작은 커피숍에 앉아서 크라쿠프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관광객 북적이는 큰 도시를 선호하지 않는 나의 취향에서 많이 벗어난 도시였지만, 크라쿠프는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게 하는 충분한 이유와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평생 이야기할 만큼 풍성한 기억을 선물해 준 크라쿠프여서, 역사가 주는 슬픔과 예술이 전하는 경이로움의 모든 순간을 이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청년 연짱이와 함께여서, 참 구태의연하지만 크라쿠프에서의 매 순간이 고마웠다. 고마웠어요, 크라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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