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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IZ Oct 04. 2018

샤갈, 백석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2018.09. 27. 4 BUZZ fall 2018

에펠탑의 신혼부부

마르크 샤갈, <에펠탑의 신혼부부>

"생각 속에서 혹은 영혼 속에서 나는 나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샤갈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술학교를 나온 뒤 당대 모더니즘의 본 고장인 파리로 떠났다. 이후 러시아 혁명과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의 삶은 이방인으로서 줄곧 유럽과 미국을 떠돌았으며, 그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조국 러시아의 고향 마을에 대한 향수와 사랑은 우수 어린 색채와 초현실적인 경향으로 나타났다. 샤갈의 그림에는 표현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가 뒤섞인 듯하면서도,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화풍이 존재한다. 많은 이들이 그를 초현실주의, 모더니즘의 선두주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샤갈 본인은 자신의 모든 작품이 생생한 현실의 기억의 기반한 것이라고 말한다. 보는 이들의 느낌과 달리 그의 그림은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하고 명료하게 새겨진 가슴 아린 추억들의 조각모음들이다. <에펠탑의 신혼부부>의 그림 속에 연인을 태우고 고향 마을로 날아가는 수탉, 당나귀와 음악,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꽃과 촛대를 든 천사들이 그러하다. 전쟁과 질병이 병존하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의 순수함이 묻어있는 사랑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시인 백석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백석의 시의 한 구절이다. 여기에서 '높고'라는 표현이 빠진다면 이 구절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벌거숭이다. '외롭고'와 '쓸쓸하니'라는 상투적인 시어 사이에 '높고'가 들어 감으로써 시는 갑자기 슬픔과 고독에 잠긴 시인의 의식을 높고도 깊은 존재의 차원으로 데려간다. 시인 백석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만주로 건너간다, 그리고 해방이 되고 나서 북한 땅에 머무르다 사랑하는 이와 가족이 살고 있는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그의 시를 읽는 경험은 아름답기에 더욱 아련한 미적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토록 따뜻한 사람이 이데올로기의 피해자가 되어 살아가야 했던 북한에서의 고통스러웠을 현실이 순수한 시어와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욱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백석의 연인으로 알려진 그의 또 다른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주인공인 기생 김영한은 그의 전 재산을 길상사의 건축비로 봉헌하며 이렇게 말했다. "천억이 백석의 시 한 줄보다 못하다."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여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간 두 예술가의 가슴 아린 순수한 사랑이 있다. 관계에 얽혀 있는 인위적인 흔한 사랑과 달리 순수한 사랑은 생각이 아닌 가슴 영역의 무위적 차원으로부터 나온다. 순수한 사랑은 구름이 넘쳐 비가 내리듯, 대상과 의지에 상관없이 흘러넘친다. 그렇듯 샤갈의 사랑은 그림으로, 백석의 사랑은 시로써 우리의 가슴에 넘쳐흐른다. 순수한 사랑은 깨어있는 사랑이다. 깨어있음은 생각을 넘은 ‘가슴’과 '존재'의 발견이며 사랑은 그것의 나눔이다. 그 사랑의 경험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20180918122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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