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을 아기처럼 돌보다
‘내 몸의 일기를 쓰려는 또 다른 이유는, 모두들 다른 얘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 느낌, 우정과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 끝도 없는 변명들, 남들에 대해 생각하는 바, 남들이 자기에 대해 생각한다고 믿는 바, 여행 갔다 온 얘기, 읽은 책 얘기 등등. 그러면서 자기들의 몸에 관해선 결코 얘기하는 법이 없다...난 오늘 내가 쓴 것이 50년 뒤에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길 바란다. 정확히 같은 뜻!’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낙>
<몸의 일기>는 10대부터 80대까지 한 사람의 몸에 대한 충실한 기록을 담은 책으로, 오로지 ‘몸’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전 생애에 걸친 우리 삶의 애환까지 엿볼 수 있는 제가 매우 아끼는 책입니다.
이 책을 따라 저도 몸의 일기를 써보고 싶단 생각을 한 것은, 비단 아주 통감하며 책을 읽은 까닭만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40대가 되면서 크고 작은 질환들이 온몸을 덮쳐오면서, 지금까지 중요시해왔던 마음, 정신, 타인, 인생 등에 대한 답 없는 쳇바퀴 같은 고민들이, 나의 자만(내 몸은 건강할 거라는)이 뒷받침 해줬기에 가능했으며, 나아가 실은 그렇게나 중요한 문제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절실히 깨닫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는, 아는 것은 어떤 사실을 알고 아프지 않지만, 깨닫는 것은 아프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어째서 저는 그토록 평생 나의 몸에 무심하고 매정했을까요. 부끄럽게도 저는 자기 몸을 챙기는 사람을 1차원적이라 속으로 조소하며,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누군가의 시선이나 나의 기분을 연구하는데 거의 모든 삶을 할애했습니다.
그것밖에 안 되던 저는 “밥은 먹었냐?, 뭐 하고 먹었냐?, 뭐를 먹어야 좋다더라.”며 평생 밥 이야기만 하는 엄마에게 늘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밥 한 끼 안 먹는다고 안 죽어!” 저는 내 말이 다 맞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참으로 어리석었던 것이지요. 나의 엄마가 무지하다고 미워했지만, 실은 엄마가 저보다 훨씬 현명했었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하다. 몸을 가꾸고 소중히 하는 가장 기본의 생활이 바탕이 되어야, 그 어떤 다음 것도 잘할 수 있다. 이런 너무나도 귀중한 이치를 엄마는 알고 있었지만, 저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서야 몸이 하는 이야기가 조용히 그리고 깊숙이 들려옵니다.
나의 몸은 가공식품이나 밖의 음식이 들어가면 바로 반응해 피부에서 나타납니다. 매일 한 끼는 먹던 밀가루 음식을 이젠 먹을 수 없어 슬픕니다. 몸에 염증이 많아 찬 음식이나 평생 애정하던 맥주도 들어가면 온몸이 아파집니다. 최근에는 뜨거운 차를 마시는 습관을 들였는데 뼛속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혈액순환이 잘 안돼서 림프샘 위주로 괄사를 하는데 효과가 훌륭한 것 같습니다. 아침에 애들 등원하면서 혹은 가벼운 산행 때 마시는 상쾌한 공기는 몸뿐 아니라 마음조차 모두 달래주는 느낌입니다.
태어난 지 508개월 즈음이 되어서야, 저는 비로소 내 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전해지는 몸의 아주 세세한 움직임, 모습, 반응 등등은 신생아가 자기 손을 또 세상의 소리를 신기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살아온 만큼 살아갈 날들이 새털 같다. 이제라도 그 이야기를 끝까지 그리고 귀하게 들으면 된다, 그렇게 믿고 몸의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과연 생후 몇개월까지 쓸 수 있을까요?
<508개월 10일>
최근 1년 가까이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낮에 잠깐이라도 졸지 않으면 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나간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는 졸기까지 했으니까.
눈은 노안이 심하게 와서 렌즈는 이제 아예 착용할 수 없다.
아이들이 엄마를 그릴 때 안경을 꼭 같이 그린다. 이젠 내 신체의 일부가 된 것 같다.
하지정맥류로 오른쪽 다리에는 문신 같은 큰 핏줄이 올라와 있다. 큰아이는 신기한지 자주 궁금해하고 만져본다.
얼마 전 한 건강검진에서 특별한 질환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모두 평균 이하란다. 서너 달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운 어깨 통증은 근육주사를 몇 방을 맞아도 소용이 없다. 그저 씁쓸하다.
요즘 내가 가장 자주 내뱉는 말은 ‘어떻게 이런 몸으로 40여 년을 (평균 수명을 80세라고 했을 때) 더 살아가지?’이다.
맙소사, 지난 40년 동안 나는 내 몸을 어떻게 대한 걸까?
나는 이제 태어났다. 앉지도 못하고 눈도 채 뜨지 못하지만, 이런 꿈을 꾼다. 진짜. 가짜도 아니고 그런 척도 하는 것도 아닌, 몸과 마음이 모두 진짜 ‘건강’한 내가 되는, 그런 꿈 말이다.
<712개월 27일>
봄이다. 일어나자마자 이제 자면서도 외울 스트레칭과 유산소 운동을 간단하게 하고 명상도 했다. 그리고 아침으로 냉이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어제 쪄놓은 두릅과 고추장에 구워놓은 더덕도 곁들였다. 저녁에는 요즘 제철인 주꾸미를 쪄서 먹을 생각이다. 운동과 식사에 집중하니 온몸과 정신이 모두 즐겁다. 아직 부족하지만 음식뿐만 아니라 그 순간(順間)의 감정, 계절, 삶까지 즐기기 위해 노력한다. 40대 중반에 요리를 다시 배운 건 암만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다. 만약 그때 아프지 않았더라면, 뻔한 솜씨에 가족들에게 항상 변변찮은 음식을 먹이면서도, 하등 쓸모없는 타인의 정보들이나 기사들을 기웃거리며 요리를 배울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 모든 과정과 선택들이 있었기에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이 단순한 식사를 넘어, 몸과 마음 그리고 나를 둘러싼 생활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생전 먼저 전화하는 법이 없는 아이들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밥은 먹었어?”라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밥 이야기 말고는 할 말이 없어?!”라며 쏘아붙인다. ‘밥은 먹었어?’라는 말에 그냥 식사 여부가 아닌,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하는 너희의 몸의 건강과 마음의 안녕이 궁금한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내가 내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