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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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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Aug 04. 2016

부드럽고 안정적인 강

강의 이름은 봄 그리고 가족

1년 전 오늘은 아내와 결혼한 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날 아내에게 준 드라이플라워는 크게 변한 것 없이 서재 피아노 위에 걸려있다. 생전 처음 해보는 결혼생활에 한창 투닥거리고 화해하고 다시 또 심통이 나고 풀어지는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아내가 발견한 것처럼 '부드럽고 안정적인 강'이 흐르고 있었다. 1년이 지난 오늘의 물줄기는 더 깊고 넓어져 있다. 22주 전 봄이라는 작은 강과 만난 덕분이다.


강은 한 방울의 물로 시작했다. 어쩌면 한 방울보다 작았다. 그 한 방울은 나와 아내에게서 왔지만, 나와 아내를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알 길 없는 한 방울의 생명은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강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이제까지 우리 두 사람이 알던 강은 더 이상 같은 강이 아니게 되었다. 한 방울이 강의 모든 곳으로 퍼졌다. 강의 색은 투명한 쪽빛, 연한 겨자빛을 띠기 시작했고, 강의 맛은 목마른날 들이키는 시원하고 은은한 현미차, 오미자차 같았다. 강의 소리는 오두막에서 수박과 참외를 배불리 먹고 누워서 밀짚모자를 얼굴에 덮어쓰고 잠시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버드나무 소리처럼 평화롭고 만족스러웠다. 강의 냄새는 아무리 세제와 섬유유연제로 덮어도 깊은 곳에서 묻어나는 엄마 냄새가 났고, 강의 질감은 햇볕에 바짝 말려 빳빳한 가운데 끓는 물에 푹 삶아 부들부들한 것이 함께 느껴졌다.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 통상적인 임신기간의 반환점을 지났다. 수술과 기형아 검사 등 다사다난했던 초기에는 다급하면서도 시간은 천천히 갔다. 안정기에 들어서자 시간이 인정사정없이 흘렀다. 주위에 물어보면 이 속도가 더 빨라지면 빨라졌지 천천히 갈 일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아내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른다.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옆구리 쪽으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봄이가 구르고 부딪힐 공간이 커지고 있다. 오른쪽 옆구리에 있다가 왼쪽 명치 쪽으로 올라온다. 배에 부딪히는 면적이 넓어진다. 이렇게 봄이라는 이름의 강이 깊고 넓어지고 있다. 


뱃속에서의 강물길은 몇 달 뒤면 끝난다. 그 뒤에 어떤 길로 흘러갈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우리 세 가족 사이에 이미 부드럽고 안정적인 강이 흐르고 있으며, 그 강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흘러갈 것이다. 그 강의 색과 맛과 소리와 냄새와 질감을 정하는 것은 세 가족이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달려있다. 어떤 물방울을 떨어뜨리는지가 중요하다. 물 한 컵도 아니고, 양동이 한 가득도 아니다. 아주 작은 물방울 하나가 온 강으로 퍼지고 스민다. 살아가며 어떤 물방울을 내어놓는지, 가족이라는 이름의 강을 어떻게 가꾸어나갈지 오롯이 우리 세 가족의 몫이다. 함께 대화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강은 우리가 바라는대로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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