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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UK Oct 23. 2024

인어

black summer

조용히 멈춘 바다 앞에 어떤 남자가 있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 남자를 잠깐동안 바라본다.

저런 남자가 실제로 존재했구나 신기해하며 쳐다본다.

근데 내 눈빛을 읽은 그 남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자 정말 내가 사랑에 빠진 걸까 의심이 들정도로 떨어지는 물마저 마음에 들었다.

- 저를 사랑하지 말고 곁에 있어주는 여자가 될래요?

다가오던 그 남자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사랑과 곁에 있는 게 다른 게 뭐죠?

내가 물었다.

- 사랑은 변해서 언젠가 날 떠나지만, 곁에 있는 건 사랑으로는 다 채울 수 없으니까요.

• 전 차이를 모르겠는걸요.

- 지금은 절 사랑하죠?

그 남자는 자신에게 반했던 수많은 여자들의 시선을 알고 있었고 그 남자를 바라보던 내 눈빛도 읽었으리라. 그래 맞다. 한눈에 반한 것. 맞지만 틀리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다.

• 네. 사랑해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 곁에 있어준다면 어떤 스킨십이든 허용할게요. 하지만 제겐 아직 아내가 있어요. 아내와 곧 헤어지면 다시 여기로 와서 당신을 기다릴 테니 날 아껴줘요. 내 곁에만 있어줘요. 할 수 있겠어요?

이상한 남자였다.

여전히 물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햇빛을 다정히 가려주지도 않은 채 그저 옆에서 이야기만 한다.

웃지도 않는다. 말투는 무미건조하다. 그럼에도 이 남자는 완벽하다. 엄마가 말하는 운명적 만남이란 이런 것인가. 그 남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잘 듣지도 않았다.

아내가 있더라도 이 남자와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거라면 내가 미쳤다고 할까.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 바다의 인어가 될게요. 저를 물 위에서 꺼내주시겠어요?

- 아니요. 저는 부탁은 받지 않아요. 부탁을 할 뿐이죠.

• 수락하겠어요.

남자는 나의 긍정적인 대답을 듣자마자 아무 말도 없이 바다로 다시 뛰어들었다.


여전히 바다는 조용했고 시끄러운 것은 내 심장뿐이었다.

사랑과 바다는 닮았다. 바다 앞에 앉아 있으니 마치 사랑이 떠밀려 오는 듯하다.

그 남자가 말한 곁에 있는다는 건 단순히 연인, 친구가 아니었다.

남자는 연인, 친구를 넘어선 무언가의 존재가 되길 원했다. 그 남자의 진짜 모습을 보고 그 남자에게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은 곧 내가 되었다.

내가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 남자 곁에 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도, 같이 감당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를 완전히 채워주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결국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먼저 그의 곁을 떠나는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내 자리를 찾은 것 같아 한결 숨쉬기 편해졌다.

그렇게

나는 그의 인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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