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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7대손 라메크의 시대.

창세기를 위한 시: 제15화

by 무이무이

카인에게는 이누크라는 아들이 있었다.
카인은 성의 이름을 이누크라 명명하고 자신의 후계자로 교육시켰다.
그 이후로 카인의 성은 이누크성이 되었고, 이누크족은 번성하였다.

많은 세월이 흘러, 이누크의 육대손 라메크가 이누크족의 통치자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라메크는 성에서 멀지 않은 숲으로 사냥을 나섰다.
노루를 쫓던 라메크는 호위병들과 떨어져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곳은 사람의 발이 닿은 적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노루가 사라졌을 법한 가시덤불 쪽을 바라보던 라메크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었다.
풀숲 사이로 시커먼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라메크는 무언가에 홀린 듯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
입구는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았지만,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졌다.
동굴 내부는 점점 어두워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희미한 불빛이 있었다.
누군가 불을 피워놓은 듯했지만 연기는 거의 없었다.
“아니, 아직도 이런 동굴에서 생활하는 미개인이 있었단 말인가?”

라메크는 단검을 꺼내 들고 주변을 살폈다.
“나는 이누크의 지도자 라메크다. 모습을 드러내라!”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그때였다.
희미하게, 동굴 한쪽 벽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그림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었다 — 벽화였다.

벽화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장면들이었다.
그 순간, 동굴 안쪽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라메크가 가까이 가보니, 어린 소년이 있었다.

“소년이여, 이곳은 죽음의 동굴이다. 인류는 진작에 이곳을 떠났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가?”
소년은 대답이 없고, 고개를 숙인 채 계속 흐느꼈다.

“소년이여, 얼굴을 들라.”
라메크는 소년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얼굴은 자신의 소싯적 얼굴과 너무나 흡사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다시 눈을 비비며 보았지만, 여전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네 녀석은 지금 무엇을 태우고 있는가?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마리화나가 아닌가?”
소년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벽을 가리켰다.

“성주님, 이 그림들을 보세요. 난 당신이 이곳을 올 줄 알고 있었어요.”
“뭐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래요. 당신의 성은 이 세상 어느 곳보다,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편리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우고 있죠.”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 그것은 나의 조상이 못다 한 꿈을 내가 완성한 것이지.”

소년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당신의 조상은 피와 땀과 눈물을 진흙과 섞어 지금의 성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한 일은, 그 터 위에 당신의 욕망을 쌓는 것이었죠.”

“뭐라는 거냐, 이 건방진 꼬마야.”
소년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아내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소년은 갑자기 반말로 바꾸어 말했다.
“아니야. 너에게는 자일라 말고 에이다라는 아내가 한 명 더 있지.
사실 너는 자일라를 사랑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어.
너는 그녀를 네 마음의 평온을 위해 소비할 뿐이야.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꾸밈없는 그녀의 외모를 숨기잖아.”

“입 다물어라!”
“에이다는 다르지. 화려하고 아름답지.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감탄하지.
너는 그들의 시선을 즐기고, 그녀를 통해 네 권력을 과시해.
에이다는 너의 부와 지위를 사랑하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결국 너도 그녀의 화려함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야.”

“아니야, 나는... 두 여자 모두 내 인생의 배우자야! 네가 감히 그녀들을 니 맘대로 해석하지 마라!”

소년은 들은 채도 안 했다.
다시 벽을 가리켰다.
두 여자가 한 남자의 양팔에 누워 있는 그림.
그 옆에는 악기와 그릇과 무기를 든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너의 성에 모여든 거야.
너는 그들을 이용해 네 세력을 확장했지.
너와 네 조상이 이룬 건 허울뿐인 문명이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텅 빈 그릇 말이야.”

라메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닥쳐라! 네가 우리가 쌓아온 이 영광을 뭘 안다고 함부로 평가하느냐!”

소년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오래전 너의 조상 카인은 자신의 동생을 죽였다.
그 죽음 위에 세운 것이 바로 너의 성이다.
카인의 어머니 이브는 이후에 "세트"를 낳았지.
세트는 카인과 달라. 욕망을 찾으려 하지 않고, 본질을 찾으려 했지. 세트의 후손들은 하늘의 별과 이 땅의 존재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 얽힘의 끈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그 힘의 근원과 본질을 마음으로 읽으려 했다. 그들은 그리고 너희 카인의 후손들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었어. 니들 문명의 탑은 절정에 달해 쓰러지기 직전이다. 그 첨탑들의 끝은 더욱 날카로워져서 서로의 심장을 노릴 거야. 땅만 파헤치는 너희들은 절대 알 수 없다.
너는 그들을 찾아가야 해.”

“이놈이 감히! 우리 조상을 욕보이는 게냐!”
라메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단검을 들어 소년의 가슴을 찔렀다.

라메크는 동굴을 뛰쳐나왔다.
살아 있는 것보다 더한 불쾌감이 그의 전신을 덮쳤다.
며칠 동안 두통이 그를 괴롭혔다.
“그 소년은… 누구였던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라메크는 궁으로 돌아가 두 아내를 불러놓고 말했다

"나는 어제 한 소년을 죽였소.
동굴 끝, 그 녀석의 얼굴이 어째서인지 내 소년 시절과 닮아 있어 나는 몹시 놀랐소.
그 녀석은 나의 조상이 더러운 손으로 이 성을 축조했다 말하며, 조상의 이름을 망령되이 불렀소. 또한 그 녀석은 당신들을 향한 나의 사랑을 깎아내렸소.
그 뒤로는 세트의 후손들이 사는 땅을 찾아가 보라 하였고, 마치 예언가처럼 기괴한 벽화를 보여주며 이 성의 장인들이 그저 바닥 뚫린 그릇에 욕망만 채우는 돼지들이라 비방했소.
‘네 아들들의 기계는 더 날카로워질 것이며, 네 딸들은 시대를 휩쓸 미소녀로 태어나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다’라는 황당한 예언도 던졌소.
나는 분노를 참지 못했소. 그 자리에서 단검을 꺼내 그의 가슴팍에 꽂아버렸소.
이 고백은 오직 그대들에게만 하는 것이니, 만약 이 사실이 발설되어 만천하에 알려지면, 그 알게 된 자는 칠십칠 배의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오.”








라메크의 동굴 — 사건과 의미의 계단

라메크가 동굴에서 만난 소년은 외형적으로는 한 명의 아이, 이야기적으로는 한 인물의 단편이지만 해석적으로는 라메크 자신의 유년기(내면의 소년) 그 자체다. 동굴 벽에 새겨진 그림들 — 카인의 형제살해, 여인의 이미지, 무기와 악기와 그릇 — 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세대가 쌓아온 욕망과 기억의 지도다.

라메크는 그 지도를 불편해했고, 소년은 그 지도를 찢어 보이며 질문했다. 그 질문들이 라메크의 핵심을 건드렸고, 라메크는 결국 소년을 찔렀다. 이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폭력의 사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과거의 자기(유년기 자아)를 폭력적으로 부정/매장’한 행위다.

아래에서 각각의 층위를 차근차근 풀어보자.

1) 사춘기·모성·결핍: 사랑의 시작은 결핍이다

사람(특히 남자)은 늘 “무엇이 부족한지”를 안다. 결핍은 부모(특히 모성)로부터 오는 맹목적 사랑의 양가성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면 자식이 독립적으로 크기를 바라면서도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이성친구가 생기면 심한 간섭을 하는 경우다.
사춘기는 그 맹목적 사랑과 독립 본능이 충돌하는 시기다. “엄마의 모든 사랑이 나를 옭아맨다”는 느낌이 생기고, 그래서 반항이 나오며 모성을 밀어낸다.
그런데 모성을 떠나보낸 자리에는 구멍(결핍)이 남는다. 그 구멍을 메우려고 사람은 사랑을 찾는다. 문제는 대부분의 초기 사랑이 ‘관계’가 되기 전에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으로 출발한다는 점이다.


라메크도 예외가 아니다. 사춘기의 반항은 성장으로 승화되지 못했고, 대신 결핍을 충족하기 위한 대상(여자)으로 전환되었다.




2) 두 아내(에이다·자일라): 두 가지로 나뉜 남자의 시선

이 이야기에서 일부다처제라는 제도가 문제가 아니고 논쟁거리도 아니다. 핵심은 “남자가 여자를 보는 두 가지의 삐뚤어진 시선”이다.

(1) 자일라(모성형) 이름의 의미: 어머니의 온기와 닮은, ‘보호·안정·내면의 배우자’ 이미지. 라멕이 마음 깊이 의지하는 존재.
(2) 에이다(장식형) 이름의 의미: 외형적으로 경쟁력 있는 아름다움. 공공연히 보여주고 싶어 하는 대상, 권력·부·지위의 장식물.


여기서 중요한 건, 라메크의 선택이 ‘진정한 애정’으로부터 온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자일라는 결핍을 채우는 심리적 보루이며, 에이다는 사회적 과시의 도구다. 둘 다 ‘타자’가 아니라 ‘내부의 결핍을 반사하는 거울’로 기능한다.
결국 사랑을 ‘관계로서 길러내는 과정’(서로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며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을 건너뛰고, 곧장 욕망의 도구로 삼았을 때 사랑은 결핍의 왜곡으로 귀결된다.


결국 남녀의 사랑은 사랑 후 관계가 아니라 관계 후 사랑이라는 얘기다. 서로 결핍과 욕망을 위해 관계가 형성되고 그 후에 진정한 사랑이 싹트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남녀의 사랑은 조건부 불장난이고, 부부의 사랑은 세월과 의리가 주는 선물인 것이다.

3) 소년 살해: 유년기의 자아를 파괴한 폭력

* 동굴에서의 살해는 문자 그대로의 살인이지만, 은유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을 살해’ 한 것이다.
* 라메크는 소년을 보고 격분한다. 소년의 말은 그가 오래전 지워버리고자 했던 기억을 꺼내며 자존심과 공포를 동시에 자극한다.
* 이 살해는 세 가지를 동시 처리한다: 수치(과거의 부끄러움)를 제거하려는 시도, 기억의 침묵(기억을 매장함)과 자기 정체성의 재구성(“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기 합리화).
* 그러나 이런 방식은 역설적으로 결핍을 더 심화시킨다. 죽여버린 만큼 그 구멍이 메워지는 게 아니라 더 커진다. 그래서 라메크는 두통과 환영에 시달린다.

4) 77배 선언의 의미 — 과잉의 자기 합리화이자 기억의 과잉

* 창세기 원문의 ‘가인에게는 칠 배, 라멕에게는 칠십칠 배’ 구절은 여기서 중요한 문학적 도구다. 라멕의 ‘77배 선언’은 단순한 과시적 폭언이 아니다.

* 하나의 측면: 과잉의 자기 방어 — “누군가 내 과거를 문제 삼으면, 나는 배로 갚을 것이다”라는 위협. 과거를 들춘 자를 철저히 제거하려는 오만.
* 다른 측면: 기억의 역설— 그는 자신의 과거(소년)를 증오하면서도, 그 과거가 자신을 규정했음을 자각한다. 77은 배수의 과장된 표지로서 ‘기억의 깊이’ 혹은 ‘감정의 증폭’을 상징한다.
* 즉 “그는 유년기를 경멸하지만 동시에 유일하게 그것을 기억하고 받아주는 사람”이다. 라메크는 외형적으로 유년기를 짓밟지만, 내면에서 그 유년기는 그를 지배한다 — 그래서 그는 기억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며 스스로를 위로하려 한다.
* 요컨대 77배는 억압→폭력→과잉 기억화의 한 몸짓이다: 그는 파괴로써 기억을 없애려 했지만, 파괴 그 자체가 더 큰 기억(후유증)을 낳았다.


5)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된 라메크


라메크는 두 여인에게 소년을 죽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고백은 두려움이나 자랑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내면의 폭로였다.
그는 자신의 욕망이 결국 한 생명(유년기의 순수성)을 빼앗았다는 사실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자일라 앞에서는 심리적 결핍을 채우기 위한 의존의 민낯이,
에이다 앞에서는 세상 앞에 서고자 했던 과시와 교만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가 두 여인에게 동시에 이 고백을 하는 것은,
두 여인이 각각 그의 ‘내면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라멕은 처음으로 ‘사랑 이전의 인간’으로 돌아간다.
가식과 권력, 소유의 틀을 벗고, 벌거벗은 인간의 죄책감으로 서 있는 존재.
그는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실체를 본다.
그 고백이야말로 ‘관계의 시작’이며,
진정한 사랑의 가능성이 열린 최초의 문이다.


5) 세트 후손의 대안 — 정화의 심리와 영성

세트의 후손들은 욕망의 성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자연과의 동화, 순응, ‘초월적 감수성’을 품은 이들이다.
이들은 기술·물질로 문명을 만드는 쪽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돌보는 기술(영성)”을 가졌다.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마음의 균형, 정화, 관용을 추구한다.
라메크의 폭력적 부정이 악화시키는 모순을, 세트 계열의 느리고 정직한 삶이 완화·정화한다.
세트의 후손은 ‘욕망의 회로를 끊는 의식’으로서 기능한다. 그들은 문명의 기계적 효율을 넘는 ‘영성의 힘’—즉, 마음을 정화하고 공동체를 재결속 시키는 능력—을 상징한다.


6) 라메크의 아들들과 딸들이 상징하는 것

1. 라메크 아들들은 기술과 권력, 이성의 문명을 상징하며 점점 ‘살의의 도구’를 만들어낸다.
2. 딸들은 미와 쾌락, 감성의 권력을 상징하며 세상을 유혹으로 물들인다.
3. 이성(기계)과 감성(유혹)은 결핍을 채우려는 인간 욕망의 두 축이다.
4. 두 힘이 균형을 잃자 문명은 번영 속에서 자멸의 씨앗을 품게 된다.
5. 라멕의 가계는 인간 문명의 욕망과 붕괴를 비추는 상징적 거울이다.


소년의 “세트의 후손을 찾아가라”는 말은 문명과 신성의 재결합, 즉 인간의 내적 회복을 예언한 것이다.
세트의 후손은 자연과 영성, 본질의 탐구자들이고, 카인의 후손은 기술과 욕망, 문명의 개척자들이다.
소년의 말은 이 둘이 충돌이 아니라 조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인간이 ‘신앙 없는 문명’으로 무너졌듯, ‘문명 없는 신앙’ 또한 공허하다는 걸 알린 것이다.
결국 그 한마디는 신성한 질서와 인간 문명의 화해, 인류의 새로운 방향을 암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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