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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뉴 May 12. 2020

나, 여전히 조금은 서운하다

핀잔만 주지 말고 칭찬도 주세요

독일 본에서 1박 2일, 뉘른베르크에서 1박 2일을 머무르고 프라하로 향하는 아침.

Flixbus가 연착되어 한 시간 가량 늦게 프라하에 도착했다. 체코의 화폐인 코루나(Kc)를 인출해 교통권을 샀다. 프라하 교통권에는 30분, 90분, 1일권, 3일권이 있고, 이 시간 안에는 자유롭게 환승이 가능한데, 여기에서 화근이 생겼다. 구글맵에는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 2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왔는데, 초행길이라 헤맬 가능성이 99%라는 사실은 가뿐히 무시하고 90분짜리가 아닌 30분짜리 교통권을 구매한 것이다.


역시나 지하철에서 트램으로 환승할 때 헤매고 나니 시간이 꽤 흘러버려, 숙소까지는 아직 두 정거장이 남았지만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두 정거장만 더 가면 되는데 눈 한번 딱 감고 끝까지 갈지, 혹여나 다음 정거장에서 검표하는 사복경찰이 타면 무임승차로 벌금을 내게 될 테니 아쉬워도 그냥 하차할지, 잠깐이지만 심각한 내적 갈등을 하다가, 아까 지하철역에서 한번 검문당했던 기억이 나서 그냥 중도하차를 해버렸다. 하차한 곳에서 숙소까지는 약 1.6km, 결국 그 거리를 캐리어까지 끌고 낑낑대며 걷게 되었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프라하의 그 울퉁불퉁한 도보는 여행자들의 캐리어 바퀴를 고장내기로 악명 높다.)


낯선 행인에게 길 묻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길을 약간 헤매는 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나와, 쓸데없이 길을 헤매지 않도록 중간중간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물어보라고 보채는 엄마는 여행하는 내내 부딪히곤 했는데, 이번에도 결국 같은 이유로 또 다투고 말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서너 명에게 길을 물어 지하철도 한 번에 타고 트램 환승도 무사히 한 것인데, 엄마는 "그러게, 아까 처음 봤던 아주머니한테 진작 물어봤으면 됐을 거 아니야"라는 거다. 속상했다.

"그럼 다시 교통권 사서 타고 갈까? 50 코루나 정도 해."라고 했더니, 엄마는 "그럼 5천 원 아니야? 비싸!"라고 했고, 나는 "무슨 5천 원이야!" 하고 눈을 흘겨버렸다. (50 코루나는 2,500원 정도 한다)


엄마는 결국 숙소에 도착해 눈물을 보이셨다. 그 무엇보다 엄마의 눈물에 약한 나이지만, 이번에는 엄마의 눈물에도 미안한 마음보다는 여전히 속상한 마음이 컸다.

내가 길 잘 찾아서 별 탈 없이 잘 다닐 때, 맛집을 미리 찾아둬서 맛있게 잘 먹을 때는 고맙다고 하지 않으면서, 내가 길을 헤매거나 즉흥적으로 들어간 음식점이 별로일 때는 핀잔주는 것이 서운했다.


엄마 폰에 새로 유심을 꼈다. 마음 같아선 "데이터도 잘 터지니까 그럼 엄마가 알아서 다녀!"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쩌랴. 그래도 우리 엄마인데.


카를교를 마치 남남인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 걷다가, 입구 쪽에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구경하는 것을 발견했다. '2분 동안 철봉 매달리기에 성공하면 1천 코루나를 지급'한다는 팻말이었다. 꽤 튼실한 근육을 자랑하는 남정네들도 실패하는데 '1천 코루나' (=한화 50,000원)라는 상금에 해볼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엄마를 보고 피식 웃어버렸다. 이렇게 엉뚱하고 귀여운 엄마에게 무장해제되지 않기란 어렵다.



덕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다를 떨며 저녁을 먹고 아름다운 프라하 야경도 감상했지만,  

나, 여전히 조금은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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