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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Dec 17. 2023

수고 많으셨어요

사진에도 감정이 담겨있음을

 2019년부터 내 정신력에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감지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고독하고 쓸쓸하던지 퇴근길 해는 저물어가고, 앞 차량 브레이크등만 보며 꽉 막힌 도로에 서행을 하면서 울컥 거리며 넘어오는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내는 횟수가 잦아졌다.


야근 후 늦은 시간 퇴근하는 길이면 순간적으로 욱 하는 마음에 차량 핸들을 갓길로 틀어 고랑에 내 차량이 전복되는 상상을 하지만 내 판단이 옳지가 않아 나 말고 누군가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정신을 차려 귀가를 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할 때마다 여기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면 나는 과연 언제 즈음 발견이 될까?? 안구기증을 해 놓은 상태인데.. 이거도 혹시 못쓰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망상에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정신적으로 너무 고됨을 느끼게 되었고

선뜻 정신과라는 장벽을 넘지 못한 나는 우선 가까운 주민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담당자분께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설문지를 잔뜩 내게 주시고는 천천히 읽어보고 해당 항목에 체크를 해보라 이야기하셨고 삼십여분이 지나서야 끝낼 수 있었다. 제출한 설문지를 들고서 한참을 툭탁거리시더니 상담해 주시는 분 표정이 굳어지신 상태로 내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성함 주소 연락처를 좀 남겨주고 가실 수 있을까요?"

"이곳에서 상담으로 해결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으니 가까운 정신과를 한번 방문 꼭 해보세요"


혹시 무슨 일인가요?


"지금 결과로는 선생님 스트레스와 우울증도 적신호로 나오시는데.. 자살증후까지 결과가 좋지 않아요.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예전에 나에 대해서 무척이나 잘 알고 있던 친구가 했던 얘기가 생각이 났다.


"외국은 정신과 상담이 당연스러울 정도로 잘 되어있어. 개인도 연인도 가족도 자연스러운 상담이니까 언젠가 꼭 한번 가서 상담받아보자! 혼자 가기 무서우면 같이 가줄게"


그때 갈걸 그랬네.. 진짜 무서워서 못 갔는데..


나는 주민센터를 찾아가 상담까지 받아놓고 결국 그렇게 또 나를 방치시켰다.

그리고 4개월 정도 지났을까?

회사에 출근해서 가맹점주와 근무 직원 간의 작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그 문제를 수습하고 있는 도중에  

집에서도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머릿속에서 누군가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감당할 수 없어" "감당할 수 없어" "감당할 수 없어"


내 앞에 놓인 일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고 나는 이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제는 다 그만하고 싶고 고단하고 쉬고 싶었다.



"팀장님 손을 왜 이렇게 떠세요? 어디 아파요?" 라며 교육받던 직원이 이야기했다.


생전 그랬던 적이 없는데 나는 정말 두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갑자기 숨을 원활하게 쉬기가 힘들었다.


마치 얇은 야쿠르트 빨대를 입에 물고 숨을 쉬는 듯했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산소가 들어오지 않는 기분이 들어 크게 숨을 쉬다 보니 과호흡이 온 건지 갑작스러운 어지러움에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바들거리는 손으로 상담이 가능한 근처 정신과를 핸드폰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열 군데가 넘는 병원이었는데 모두 당일 상담 예약 접수는 안된다 하셨고 마지막 한 곳에 전화를 걸어 떨리는 목소리로 상담 문의를 드렸더니 어딘가 목소리가 다급해 보이셨는지 꼭 늦게라도 찾아오라고 하셨다.


병원에서 설문지를 다시 작성하고 난 후,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갔다.

뭐에 홀린 건지 그간 있었던 일들을. 내가 담아두었던 일들을.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무런 질문 없이 한참을 듣던 의사는 내게 이야기했다.



"현재 환자분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거 알고 계시죠?"

"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우울증. 자살증후까지 위험 수준인데 공황까지 증세가 있어 보이세요. 약을 드셔야 할 것 같은데 환자분 혹시 약을 드실 의지는 있으신 거죠?"

"예 먹어야죠. 먹으면 괜찮아지는 거죠?"


"내일 당장 나아질 거라고 장담을 못 드리는데. 약을 안 드시면 더 심해질 수 있어요.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오래 드셔야 할지도 몰라요"

"예 알겠습니다."


"그냥 저는 환자분 이야기 듣기만 했는데도 이렇게 마음 무거운데. 그간 혼자 버티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수고 많으셨어요 라는 타인의 위로에 어찌나 한참을 목놓아 울었던지


아마 그때 내게 먼저 같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자며 이야기했던 여자친구는 그간 내 모든 과정과 걸음을 듣고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그때 갔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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