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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 남는 자와 떠나는 자 ep01

40대 후반 여자직장인으로 살아남기

by 이름없는선인장

(이 글은 올 초 같이 일하던 후배가 이직 결심을 하고 퇴사일이 정해지고 남은 약 한 달간의 시점에서 작성된 글이다)


퇴사 전까지 퇴사 예정자인 후배와 사무실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어색하고 불편하고 함 든 시간이 될 거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


아마 다시 같이 일하게 되었을 때 이렇게 갑자기

누구 하나가 먼저 간다던지 하는 부분을 생각해 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조직을 떠나는 것을 괜찮다고 했지만.

후배는 나를 볼 때마다, 죄송하다고 하고,

일을 대신해 주면 본인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한다.

가뜩이나 매일 회사에서는 답답한 상황의 연속이고

한 달 안에 후임도 정해질지 미지수 인 상황에서

난 그런 말을 들을수록, 앞으로 내가 다 떠맡아야

할 수도 있는 수많은 일들과 곧 닥칠 그 두려운 미래의 시간이 연상되어 매일 출근하는 길이 더 답답하고 버겁고 짜증이 났다.


나는 선배지만 마냥 후배를 응원하고, 너그럽고

쿨 하게 괜찮다고 보내주기에는 내 걱정이 먼저

앞섰던 것 도 사실이다.


그렇게 나의 태도는 변하는 감정 기복과 함께 매일 변했다.




나, 조직에 남는 자

곱씹어보면 후배에게 이곳으로 이직 재안을 했고 힘들게 한 3주 걸려 입사가 결정됐다.

최소 1년은 같이 고생해 보자고 입사한 지 이제 겨우 두 달. 3주 간 내부 의사 결정을 통해 어렵게 후배가 오케이 한 연봉 유지선의 조건을 끌어내고 내부 결재를 득하는데도 시간이 걸렸었다. 그 후에도 나도 내심 불안하여 “최종 이직 결정”은 오롯이 후배의 몫이라고 신중이 생각하고 결정해 달라고 몇 번을 당부하긴 했었다.


각고의 고민 끝에 후배가 온다고 했을 때, 부담도 되나 나 홀로 고군분투하던, 코너에 몰린 듯한 조직 생활에서 내심 든든하고 기뻤던 것도 사실이다. 서로 업무를 같이 진행해 봐서 어떤 업무 스타일인지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새로 합을 맞추거나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막상 회사에 열 받는 일이 터지고 전 직장 사장님의 오퍼를 받고 고민한 시간은, 나한테 보인 건 반나절 정도 걸린 듯했다.(물론 본인도 쉽게 결정한 것은 절대 아니며, 나와 제대로 같이 일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고, 그 어느 때보다 후배의 빈자리가 더 느껴질 것이기에 그 적응기가 어느 때보다 더 힘들 것임을 예건 할 수 있기에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더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곳 아니어도 된다고 하며 그 후배와 함께 퇴사를 외치거나, 동료애를 빙자하여 예전처럼 같이 이 조직에 후배가 남는 드라마 같은 것을 기대하기엔 우리는 많이 변했다. 현실은 생존게임이고 우리는 각자 각자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진다.


머리로는 이해하나, 감정적으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나.


그동안 팀 내에서 많은 인사이동으로 팀장을 비롯, 의지하고 일했던 과장도, 대리도 다 다른 팀에 가면서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별의 후유증은 꽤 오래간다. 조직에서의 감정 분리는 나에겐 생각보다 어려운 숙제다.


나는 좋은 선배는 될 수 없나 보다.




후배, 조직을 떠나는 자

후배가 오고 나자마자 어처구니없게도 면접을 봤던 실장도 바뀌고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 새로 온 실장은 후배와 비슷한 대행사 경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스타일을 알기에 더 충돌이 날 수도 있었다.


입사하고 맡은 프로젝트는 거의 본인 혼자 이끌어 가야 하는 수준이었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방관만 하는 조직 분위기도 한 몫했다. 내가 도와준다고 하긴 했으나 나 또한 모두 적응하게 하기에는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본인이 하던 일을 내가 이끌어 가야 함에 그는 자기가 하는 업무 처리 스타 일을 알지 않냐며, 지금 이직이 결정되었다고 해서 아직 이 조직에 맘이 뜨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끝까지 일처리를 다 하고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스치 듯 “업무 인수인계”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웃으며 “업무 인수인계할 게 없다”, “차장님이 다 아시지 않냐”며 얼버무렸고, ‘이번 달부터라도 대행사에게 담당자를 차장님으로 미리 바꾸면 안 되겠냐’는 말까지 했을 때는 내심 섭섭하고 열 받기도 했다. 이게 무슨 깔끔한 마무리인가?


그리고 난 실무 담당이 아니다. 후임을 빨리 뽑아서 실무 업무 인수인계를 바로 받게 하는 게 나의 목표였고 그래서 나는 미리 업무를 받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정 후임이 안 뽑히면 임시로 3월에 내가 받는 걸로 대행사에 통보하라고 했다.


이직 결정 전에는 본인이 적응할 수 있도록 재택을 되도록 안 하고 사무실 근무를 같이 요청했고, 재택을 근래에 하게 되었을 때는 재택 일정도 맞춰서 진행했다. 하지만 퇴사가 결정되고 나서는 계속 쉬고 싶다고 하면서 연차를 쓰고, 일주일에 쓸 수 있는 재택 횟수를 계속 물었다. 누가 봐도, 이제 더 이상 일을 하기 싫은 눈치였다. 은근슬쩍 나에게 벌써부터 업무를 넘기려고 하고 매번 흘리는 말에는 이제 다 대신해달라는 그의 반응에 내가 짜증을 더 내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이다.




서로 배려라는 착각

그리고 그는 드디어 폭발했다.

자신이 언제까지 죄송하다고 해야 하며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차장님도 괜찮다고 하지만, 안 괜찮은 게 얼굴에 다 드러나는 스타일이고 말투에서도 차갑게 대하는 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본인이 모른 척하겠냐고.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불편하게 일해야 하는 건지. 본인이 그냥 빨리 사라지는 게 나은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고 갔으면 좋겠다.

지난 두어 달 동안 고생한 부분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업무 인수인계할 게 있나요”라고

이야기하면 여기 사람들은 네가 정말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행사가 일을 다하지 않냐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인데…”라고. 또,


네가 마무리 잘하고 간다고 했으면, 나한테 그전에 계속 자리를 비우고 업무를 부탁한다고 하면 난 뭘 마무리하고 간다는 건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연차는 업무에 차질만 없으면, 알아서 대행사랑 사전에 일정 조율해서 일처리를 하고 중간중간 쉬어도 된다. 단, 네가 일을 하기 싫어서 떠 넘기고, 자꾸 나를 믿고 자리를 비우려고 하는 느낌을 주진 말았으면 하고, 나도 그건 기분이 나쁘다. “


후배는 이 모든 게 내가 “자기 합리화”를 한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다 자기 탓이고, 자신의 말이나 행동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하지만 막상 항상 죄송하다고 말하게 만들 정도로 죄인 취급을 하는 듯하다고 했다.


근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후배는 수시로 자기가 빨리 나가는 게 더 내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고만 했고, (솔직히 그가 끝까지 있다가, 후임에게 업무 인수인계하는 게 최선인데, 왜 빨리 나가는 게 내게 도움이 될까?) 그저 그는 계속 나에게 죄송하다고 해야 하고 그럼 또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갖고 한 사무실에서 내 예민함을 받아 들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그도 결정이 나고 나서는 매일 벌써 머릿속에 새로운 조직에서의 적응, 팀장으로 가기 때문에 새로 뽑아야 할 팀원 구성, 매출 성과를 기대하는 대표님까지 모든 게 부담스러운 건 알겠다. 하지만, 그런 것도 내 앞에서 또 다른 고민인 것처럼 말하는 게, 맘이 다 뜬 것처럼 느껴지고, 그저 이 조직을 탈출해서 갈 곳이 정해진 자의 여유로만 들린다.




이직을 할 때 , 조직에 남는 자와 떠나는 자의 조직을 대하는/ 일을 대하는 / 사람을 대하는 감정의 깊이는 다르다.


그들은 이곳을 떠난다는 탈출 확정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떨림과 희망에 찬 불안감이 공존한다. 그들의 얼굴은 화색이 돌고, 떠나기 전에 여기저기 인사하고 정리하기 바쁘다. 아무리 현 조직에 같이 공존에 있어도 같은 조직에서의 고민과 뒷담회는 그저 임시로 지나가는 이제는 별 감정 소모기 필요치 않는 가십거리가 되고, 업무도 남는 자들은 누가 업무를 받을 것이냐에 분주하고 부담이 되고, 떠나는 자는 더 이상 새롭게 추가되는 업무가 없어 정리할 부분만 남아 홀가분하다.


남는 자는 이곳을 탈출하는 많은 퇴사자나 이직러들을보면 너무 부러웠다. 그들의 용기 있는 결정에, 확신에, … 나 또한 후배가 오기 전에 항상 이직을 하고 싶은 맘도 있었고, 지금 그 후배가 나한테 계속 그 전 직장으로 같이 가자고 한다.


하지만 그는 대표에게 직접 오퍼를 받았고, 희망 연봉을 이야기해서 나름 스카우트돼서 가는 것이고, 그가 말하는 “같이 가자”는 나는 대표님에게 연락해서 “제발 자리 좀 하나 주세요”같은 의미이다. 그는 원하는 연봉, 직책, 브랜드를 맡지만, 나는 대표님이 원하는 직무, 직책, 그리고 연봉도 동결될 수 있는 구조다. 단지 내가 나이가 많아 어디 갈 곳이 없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지만, 후배의 표현인 “굽히고 들어가라”는 말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전 직정으로의 복귀는 퇴사자 중에 8-90%가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곳이다. 나도 아직 확신할 수 없는 그곳에 돈 때문에 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상처받을 수 있는 전 직장에 후배가 다시 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곳 만은 아닌 곳으로 갔으면 했다.


두 달 후, 그는 그곳을 나왔다. 다시 가면 더욱 힘든 그곳을 그가 자신을 자책하며 퇴사했다고 했다. 다시 이곳으로 재입사를 할 수 없음에 안타깝기만 하다.



나도 이곳에서 탈출이 하고 싶은 건 맞다.

단지 저 방식은 아직 나의 옵션에는 없다.

나이가 많고 경력도 길지만

더 지치기 전에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게

나를 위해서 맞는 것 같다.

그게 나만의 자기 합리화 일지라도.


#서로 다른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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