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혈압도 자-알 올랐다
요즘 내 최대 관심사는 건강이다. 닭가슴살을 먹고, 단백질 파우더를 타 먹으며 근육을 키우는 '몸짱' 식의 삶이 아니라 말 그대로 건강하게 잘 사는 삶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먹는 게 잘 사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아침마다
"오늘은 나가서 먹을까?"
"아냐, 배달시킬까?"
"아니면 집밥을 제대로 차려볼까?"
매일 끼니마다 우리는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늘 그렇게 여유롭게 고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유독 피곤한 날이 있다. 신체활동은 별로 없었어도 머리를 잔뜩 썼거나 신경 쓰이는 일이 몰아친 날이면 기립근이 말을 안 듣는다. 그런 날엔 밥 해 먹는 일도 버겁다.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기 위해 장바구니에서 메뉴를 넣었다 뺐다 하는 것조차 귀찮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과 함께 집 앞 식당 총출동이다.
입맛이 담백한 날엔 백반집.
고기가 당기는 날엔 미나리 올려 삼겹살.
회덮밥이 끌리는 날엔 돈가스를 함께 시켜,
온 가족 뷔페처럼 푸짐한 저녁을 즐겼다.
그렇게라도 잘 먹고 돌아오면 그날 하루는 비록 피곤했어도 기분 좋게 마무리되곤 했다.
물론 가끔은 비대면이 정답일 때도 있다. 사람 얼굴조차 보기 싫은 날 식당 가는 체력조차 없는 날엔 배달이 최고다.
치킨, 피자, 감자탕, 쌀국수까지 요즘엔 내열용기에 뜨끈한 국물도 거뜬히 온다. 먹고 나서 치우는 건 조금 귀찮지만 그조차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마음에 '위로'처럼 오는 한 끼였다.
그렇게 자주 외식을 하면 다시 또 집밥이 그리워진다.
계란말이를 직접 말고, 대충 스팸 넣어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찬밥에 참기름 넣어 비벼 먹는 어디에 내놔도 특별할 것 없는 반찬들인데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 밥은 언제나 제일 든든했다.
문제는, 너무 잘 먹은 거다.
적당하게 먹었어야 했는데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어릴 적, 밥상머리 교육에서 처음 배운 건 이런 거였다.
"밥알 한 톨도 남기면 지옥 1년 추가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게 몸에 배어버렸다. 잔반처리기라고 놀려도 내 정서에선, 다 먹어야 개운하다. 접시에 남은 반찬을 싹 긁어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나오는 한마디.
"오늘도 잘 먹었다."
그 말은 어느새 내 하루의 마침표가 되었고 살짝은 자랑 같은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건강한 삶이라고 믿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운동도 꽤 했다. 러닝 앱에는 매달 100km씩 기록이 쌓였고 남는 시간엔 푸시업, 윗몸일으키기, 스쿼트까지 나름대로 '꾸준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조금씩 고장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자목.
X-ray를 찍다 보니 골반도 약간 틀어졌다고 하고
날개뼈, 어깨, 허리...
쑤시지 않는 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 일찍 운동하던 일상은 사라지고 늦잠을 자는 쪽으로 패턴이 바뀌었다. 이전과 같은 운동량 없이 계속해서 먹던 그 식습관만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높게 나왔다. 두 번을 재도 떨어지질 않았다. 검진이 끝나고 따로 병원 상담을 예약하라고 했다.
그 순간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내가 꽤 괜찮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건강검진 결과는 정반대였다. 잘 먹는 게 잘 사는 거라고 믿었다. 그걸 실천하며 살았다. 심지어 '나는 건강하다'는 자신감으로 포장도 했다.
그런데, 노화는 어쩔 수 없어도 관리 부족은 분명 내 책임이었다.
"오늘도 잘 먹었다." 그 말이 나에겐 가장 든든한 마무리였고 어쩌면 가장 위험한 습관이었는지도 모른다. 먹는 걸 잘했다고 안심했던 날들이 내 몸엔 조용한 경고로 쌓여 있었고, 그 말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내 혈관에 남아 있었다.
님아, 그 말을 내뱉지 마오.
"오늘도 자-알 먹었다."
그 말은
당신의 혈압을
끌어올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