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잘 맞더라니
골프를 한창 치던 시절, 나는 스스로에게 꽤 만족하고 있었다. 왕자병까진 아니었지만, 골프 중독은 확실했다.
연습도 많이 했고 드라이버, 아이언, 퍼팅, 어프로치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었다. 100이면 100, 150이면 150, 250이면 250. 그야말로 내가 생각한 그 자리로 공이 '탁' 하고 떨어졌다. 포물선도 예쁘고, 방향도 정확했다.
처음에는 땀을 줄줄 흘리며 자세 잡기도 버거웠는데 이제는 코치님도 슬슬 내 기량을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요즘 샷 괜찮으신데요? 필드는 언제 가세요?"
"아, 아직은 연습만 하고 있습니다."
"에이~ 이렇게 잘 치시는데! 슬슬 가셔야죠."
"아 아닙니다. 아직 채도 없고 그런데요."
사실, 골프를 처음 시작할 땐 이렇게 빠져들 줄 몰랐다. 그저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골프를 택했을 뿐이다.
처음 등록한 GDR 연습장은 채를 종류별로 대여해 줘서 굳이 사지 않아도 됐다. 골프채가 비싸다는 얘긴 익히 들었고 진짜 고수는 장비 탓 안 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우스채로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코치님이 슬쩍 한마디를 던졌다.
"장비도 사세요. 제 이름 대고 가시면 꽤 싸게 살 수 있어요."
지인 DC라는 말에 그만 솔깃해져서,
그날로 로데오 거리의 추천 매장으로 달려갔다.
겉보기엔 소박했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화려했고
문을 열자마자 '새것 냄새'가 진동했다.
"안녕하세요, 이 프로님 소개로 왔습니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아이고~ 그럼요. 여기 오셨으니 제대로 보셔야죠."
시뮬레이터 앞에서 몇 번 휘둘러 보니 나에게 딱 맞는 채를 추천해 준다. 번쩍거리고 단단해 보이는데 의외로 가볍고 손에 착 감긴다.
가격은,
100만 원이 살짝 넘었다. 사은품으로 이것저것 받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00만 원이라니. 할인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투자해야지!'
그 후로는 '장비발'이 더해져 레슨도 연습도 더 진지하게 몰입했다. GDR 연습장은 이제 내 아지트 같았고, 연습량이 많아진 덕에 스크린 골프에선 친구들과 커피 내기를 해도 늘 이겼다.
잘 맞고, 잘 되고,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결국, 입에서 그 말이 툭 튀어나왔다.
"곧 필드 나가야겠는데?"
아마,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첫 필드는 누나가 데리고 가주기로 했다. 몇 주 전부터 설레며 준비했다. 그날 쓸 간식이며 음료며 내가 챙기겠다고 자청했고, "차는 내가 큰 차니까 태워줄게"라며 호언장담도 했다.
완전히 '내 데뷔전'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하늘은 내 편이 아니었다.
출발 당일, 비가 쏟아졌다. 스쳐 가는 소나기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열대우림처럼 미친 듯이 퍼부었다. 진심으로 우리나라가 동남아인 줄 알았다니까.
다행히 누나가 회원권 등급이 좋아서 "가을쯤 다시 좋은 날짜로 예약해 줄게"라며 일정을 미뤄주었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래, 이번 기회에 더 연습해야지."
오히려 마음은 더 불타올랐다. 하루에 두 번씩 연습장에 나갔고 스윙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는 완벽한 필드 샷이 그려졌다.
그런데 사람 욕심이란 게 참. 잘 되다 보면 더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날도 그랬다. 감이 너무 좋아서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싶은 마음으로 드라이버를 세차게 휘둘렀다.
"빡!"
정확히 기억난다. 그 소리와 동시에 나는 "엌!"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누가 들어도 내 갈비뼈에 뭔가 사고가 난 소리였다.
너무 아픈데 내 모습이 또 웃겼다. 웃으려다 더 아파서 웃지도 못하고 기절할 듯한 고통에 숨만 몰아쉬었다. 결국 와이프 부축을 받아 재활의학과로 직행했다.
"갈비뼈는 깁스도 없습니다."
"무조건 쉬셔야 합니다."
"다 나을 때까지 휘두르면 안 돼요."
"다시 벌어지면 더 아파요."
"물리치료받고, 약 잘 챙겨 드세요."
의사 선생님의 말은 친절했지만, 그 안에는 “이걸 왜 이렇게까지 했냐”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나왔고 갈비뼈는 통증 없이 조용히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조금 더 잘 치는 거였다. 누구랑 경쟁한 것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아등바등했던 걸까.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타이거 우즈가 아니다. 이렇게 연습한다고, 갑자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날, 나는 욕심을 냈다. 필드보다 먼저 달아오른 건 내 의욕이었고 가장 먼저 날아간 건 공이 아니라, 내 갈비뼈였다.
그래도 뭐, 결국 내 탓이다. 내가 한 건 연습이 아니라 그저 ‘의욕 과잉’이었다. 그리고 그 의욕은 내 몸을 살짝 물어버린 셈이 되었다.
님아, 그 말을 내뱉지 마오.
"곧 필드 나가겠는데?"
그 말은 당신의 갈비뼈를 슬쩍이라도 긁히게 만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