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렇게 길 줄이야
나는 꽤 괜찮은 보호자라고... 적어도 보통 이상은 한다고 생각해 왔다. 애초에 내가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 다짐했었다. 절대 외롭게 안 하겠다고.
방치하거나 속상하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미용도 제때 하고 좋은 사료와 영양제도 챙겼고 아무리 바빠도 혼자 내버려 두는 일은 없게 했다. 심지어 가족이 순번을 짜듯 돌아가며 누군가는 꼭 집에 남아 있기로 한 암묵적인 약속도 있었다. 강아지가 외롭지 않게 늘 누군가 곁에 있도록 말이다.
운동도 뛰는 운동이 아니라 저녁에 걷는 걸로 바꿨다. 강아지가 같이 갈 수 있게. 어쩔 땐 가방에 넣고 땀이 나도록 걸어도 기꺼이 짐처럼 품에 안고 다녔다. 쌀가마니를 짊어지는 것처럼. 이쯤이면 인정받을 만하지 않나?
이번에 <귀멸의 칼날 – 무한성편>을 보러 갔을 때도 난 그 믿음을 품고 집을 나섰다.
4시 30분 영화 시작. 집 앞 영화관이기에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집에는 6시 반 도착할 수 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자신 있게 강아지한테 말했다.
“까꿍아 금방 올게. 6시 반이면 와.” (이렇게 말하고 사라지는 게 늘 문제인데…)
원래대로라면 같이 다니는데 영화관과 목욕탕만큼은 그게 안되기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의 이별을 했다.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었다.
...
생각도 못했다. 정말로 안타깝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10분 만에 완전하게 몰입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숨이 멎고, 손에 힘이 들어가고 중간중간 감동에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미안하게도 영화도중에는 시간에 대한 나의 감각이 너무나도 무뎌졌다. 핸드폰화면의 시계를 확인할 용기는 없었다. 어쩌면 영화에 빠져들고 싶어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드디어 엔딩.
스크롤 올라오고 불이 켜진다.
그제야 현실감각이 돌아오면서 나도 시계를 봤다.
거의 8시다.
러닝타임이 세시간일 줄은 정말 몰랐다.
...?
.. ..?
………??
심장은 이미 엄청나게 뛰고 있었고 그저 빨리 나오기 위해 서둘렀다. 주차 정산을 하려는데 영수증은 못 찾겠고 내 차 번호조차 기억이 안 나기 시작했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우즈이 텐겐 사마가 내 손을 붙잡고 "너는 집으로 먼저 돌아가라" 그런 말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오는 길도 영화였다. 신호는 왜 그렇게 많고 길은 왜 그렇게 막히는지. 내비는 도착 예정 시간을 자꾸만 뒤로 미뤘다. 심지어 그 짧은 거리를 도는 데 거의 30분이 걸렸다.
그렇게 도착한 집은 어두컴컴하다. 그저 적막함이 흐른다. 온 집안에 불이 꺼져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스치는 외로움의 냄새. 그리고 소파 밑에서 강아지가 기어 나왔다.
"까꿍ㅇㅏ!!"
다급해서 목소리마저 삑-소리가 났다.
평소라면 깡충깡충 달려오고 아주 난리가 났을 텐데 오늘은 그저 고개만 들었다. 꼬리는... 조금 흔들었지만,
딱 거기까지.
지쳐 있었다.
그 순간 심장이 '똑' 하고 내려앉았다. 그 조용한 눈빛이 말하는 듯했다.
"너는 금방 온다더니 지금이 몇 시야..."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괜찮은 보호자야."
"우리 강아지는 외롭지 않게 키우고 있어."
"그래도 남들보다는 잘하고 있지."
그 모든 말들이 자기 위안이자, 입방정이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나는 그들과 다르다'라고 착각했지만 그건 진짜 다름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던 시간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운은 오늘 영화 러닝타임과 함께 조용히 끝났다.
님아, 그 말을 내뱉지 마오.
그 말들은 자신감이 아니라, 확인 없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강아지가 오늘 하루 혼자였다는 걸 잊지 마라.
과신하지 마라, 입방정은 늘 부메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