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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개는 '앙' 물어요.

이 눔 시키가!

by 피터의펜

우리 집에는 까꿍이라는 강아지가 함께 산다.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그저 순둥-하면서 유난히 애교도 많은 아이지만

가끔 보면, 이 집에서 제일 당당한 생명체는 그가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여름이 되면 특히 그렇다.

안방에서 가장 시원한 자리.
천장형 에어컨 바람이 직방으로 닿는 그 지점을 까꿍이는 어김없이 찾아낸다.


그 자리에 몸을 착 붙이고 눕는 순간, 그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이 집의 에어컨은 자기 전용 바람이라도 되는 양.


그러다 보니 우리는 종종 농담처럼 말한다.
"우리 집 의전서열 1위는 까꿍이다."


이럴 때 보면 참 욕심도 많다 싶지만,

그래도 얌전하게 있으니 사랑스럽다.

그렇다고 까꿍이가 더위에 유난한 체질은 아니다.

계절을 특별히 타는 것도 아니다.


겨울이라고 다를 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열이 올라온 코타츠 테이블 안으로 들어간다.

새벽의 찬 공기를 피해 따뜻한 그 안에 쏙 들어가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꼼짝 않고 잔다.


그럴 땐 정말로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온순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기면서도,

사람 곁엔 언제나 가장 먼저 다가오는 까꿍이다.

까꿍이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누가 자길 예뻐해준다 싶으면 꼬리를 헬리콥터처럼 돌리고,

분홍 혓바닥을 활짝 내밀며 방긋 웃는다.


누가 간식이라도 꺼내면 배까지 드러내고 벌러덩 누울 기세다.
간도 쓸개도 없는 멍멍이.

그래서 더 귀엽다.


하지만, 똑똑한 건 아니다.

"손!" 하고 외쳐도 그저 나를 바라보며 방긋 웃는다.

몇 번을 반복하고 앞발을 억지로 잡을 시늉을 해야,
그제야 "아~ 그거?" 하는 듯 슬쩍 앞발을 올린다.


다른 개들은 "앉아", "하이파이브", "코" 같은 것도 척척 한다는데,
까꿍이는 그런 건 별 관심이 없다.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땐 그냥 웃고 만다.

댕청미가 넘치는 아이.

그래서, 또 귀엽다.

그래서, 미워할 수가 없다.


오늘도 딱 그런 날이었다.


여름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습하고 더운 날씨.
까꿍이는 아침부터 에어컨 아래에 자리를 잡고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눈을 뜨자마자 사료를 한 그릇 비우고 간식을 보자마자 깡충깡충 방방 뛰며 신이 났다.

그런 모습을 하루 종일 보고 나니 가슴 깊은 곳에서 착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우리 개, 진짜 착하고 순하고 귀엽다…'


무슨 생각에서 그랬을까.

자신만만하게 왼손으로 까꿍이를 안고,

오른손엔 치약을 묻힌 칫솔을 들었다.


"우리 개는 안 물 거야. 절대 안 물어."


그렇게 나는 또다시 말실수를 했다.

까꿍이도 방긋 웃는다. 마치,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를 얼굴로.


나는 그 입을 조심스레 벌리려 했다.


그 순간.


까꿍이는 천천히 윗입술을 들어 올리더니 짤뚱한 앞니 네 개를 드러냈다.

공포감이라고는 1도 없는 표정.
하지만 그 웃음 속에 담긴 메시지를 나는 놓치고 말았다.


'싫어. 지금은 그런 기분 아니야.'

라고, 그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닭고기향 가득한 치약 묻은 칫솔을 입에 집어넣으려 했을 뿐인데 물렸다.


"이놈 시키가…!"


검지손가락에 살짝 스크래치가 났고, 피도 송글 맺혔다.


까꿍이는 그저 나를 바라보며 또 방긋 웃었다.


간도 쓸개도 없는 강아지가 그 순간만큼은 나의 신뢰만 쏙 빼먹고 웃고 있었다.

믿었던 개에게 물렸다고 하면 좀 과장이겠지만,


그 불필요한 한마디가,

우리 멍멍이는 '절대 안 문다'라고 착각하게 만들었고,

결국 내 손가락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됐다.


님아, 그 말을 내뱉지 마오.


"우리 개는 안 물어."

그 말은 당신의 손가락을,
아주 살짝이라도, 긁힐 수 있게 만들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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